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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세이]박용우/'상큼한 생활'로 감기 예방을

입력 | 2003-12-08 18:25:00


감기 환자들이 부쩍 늘어난 것을 보니 본격적인 겨울이다. 아내는 감기를 피하려면 비타민C를 많이 섭취해야 한다며 아이들에게 매일 저녁 강제로(?) 감귤을 먹이고 있다. 앉은자리에서 순식간에 귤 10개를 해치우는 큰아이가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면 다행이지만, 저러다 비만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비타민C를 먹으면 감기를 예방할 수 있을까? 30여년 전 세간에 화제를 몰고 왔던 책 ‘비타민C와 감기’의 저자인 폴링은 비타민C를 하루 1∼2g 먹으면 감기에 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암도 예방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비타민C 연구로 노벨상을 두 번이나 거머쥔 폴링의 영향력이 워낙 대단해서 수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매달렸지만 그 효과를 객관적으로 입증하진 못했다. 이제까지의 연구결과를 종합해 보면 비타민C는 감기를 예방하지는 못했지만 증상이 나타나는 기간을 조금은 줄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타민C는 체내에서 면역기능 유지, 조직의 재생, 상처 치유에 도움을 준다. 동물실험에서는 면역증강, 감염예방 효과도 입증돼 있다. 철분 흡수를 도와주고 무엇보다 체내 유해물질을 없애주는 강력한 항산화 기능이 있다.

비타민C의 효과를 신봉하는 동료 교수는 감기를 예방하거나 치료하려면 하루 2∼10g을 섭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직 임상 효과가 명확히 입증되진 않았어도 건강에 해롭지 않고 비용도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으니 적어도 위약(僞藥) 효과 이상은 기대할 수 있지 않느냐는 설명이다.

하지만 비타민C 고용량 요법이 무해한 것만은 아니다. 비타민C를 하루 200mg 이하로 섭취하면 약 90% 정도 체내에 흡수되지만 1∼1.5g을 먹으면 50%, 12g 이상 먹으면 16%로 흡수율이 뚝 떨어진다. 따라서 한번에 1g 이상 섭취하면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 또 소변의 수산염 농도를 높여 신장결석이 생길 위험도 높아진다. 드물지만 고용량의 비타민C는 체내 조직에 과다한 철분을 축적시켜 간 췌장 심장 등 장기에 손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의 비타민C 하루 권장량은 70mg, 미국 사람은 90mg이다. 흡연자는 35mg 더 섭취하도록 권고한다. 최근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타민C가 풍부하게 들어 있는 과일과 채소를 평소보다 조금만 늘려 섭취해도 심혈관질환을 예방할 수 있으며, 예방 효과를 얻기 위해선 비타민C 섭취량이 하루 120∼200mg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비타민C는 감귤류 등 각종 과일과 채소에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으므로 과일과 채소를 즐겨 먹는 사람이라면 굳이 보충제를 따로 복용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외식이 잦고 충분한 과일과 채소를 섭취하지 못하는 직장인, 다이어트 중인 여성, 체내 흡수능력이 떨어진 노인, 담배를 피우는 사람,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 당뇨병 환자 등은 비타민C 보충제를 권하고 싶다. 필자가 권하는 적정 권장량은 하루 500mg를 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과일이나 채소를 잘 먹지 않는 어린이에게는 보충제를 주기보다 식습관을 바꾸게 하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비타민제를 열심히 복용해서 감기를 예방하겠다는 사람과 평소에 끼니를 거르지 않고 골고루 먹는 식습관을 갖고 있으면서 충분한 수분 섭취, 외출 후 손 씻기를 실천하는 사람 중 어느 쪽이 감기 없는 건강한 겨울나기에 성공할까?

박용우 성균관대 의대 교수·가정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