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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법정에 선 베드신…대법원 ‘叛奴’ 무죄판결

입력 | 2003-12-08 18:37:00


‘성냥갑의 마야’ 사건.

1969년 5월 부산의 한 성냥공장이 사고를 쳤다. 스페인 화가 고야의 명화 ‘나체의 마야’를 성냥갑에 인쇄해 대량으로 판매한 것. 당시 25원 하던 성냥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문제의 성냥이 바로 ‘유엔 성냥’이다. 유엔 성냥은 지금의 40, 50대에겐 한 세대 전의 싸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 속의 풍물이다.

회사는 결국 음화(淫畵) 제조 및 판매 혐의로 기소됐다. “세계가 알아주는 명화가 어떻게 우리나라에서는 음화일 수 있느냐”는 게 회사측의 항변. 그러나 대법원은 “명화도 배포 양식과 목적에 따라서는 음란일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같은 해 7월에는 염재만의 소설 ‘반노(叛奴)’가 걸려들었다.

1심에서 3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하자 작가는 즉각 항소했다. 외설시비로 국내 문학작품이 법정에 선 것은 처음이었고 학계와 문단은 들끓었다.

검찰이 문제 삼았던 한 대목. ‘당신 사타구니를 봅시다. 얼마나 도도한지 봅시다… 서로의 국부가 교면스러운 빛을 발산하면서 한껏 부조되고 그 위에 온갖 충격이 요동쳐 갑니다….’

7년의 법정공방 끝에 대법원은 작가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이 ‘반노’와 유엔 성냥을 문제 삼았던 1969년은 박정희 정권이 3선개헌을 앞두고 ‘퇴폐 척결’의 기치를 내걸 때였다. 성(性)에 관한 한 문란하기만 했던 권력이 ‘퇴폐와의 전쟁’을 벌인다? 참으로 맹랑한 시절이었다.

타락한 권력일수록 성의 빗장을 굳게 잠근다고 했다.

1992년 소설 ‘즐거운 사라’로 된통 홍역을 치렀던 마광수 교수는 반문한다. “한국의 거리에는 성이 넘쳐나고 사람들은 그 속에 파묻혀 지낸다. 그런데도 짐짓 딴전을 피우는 이 엄숙주의는 뭔가?”

성의 위선(僞善)과 까발림, 그 영원한 불화(不和)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베드 신의 묘사는 한 나라의 문화의 척도’라고 했던가. 다만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성에 덧칠을 하고 생채기를 내는 게 능사는 아닐 것이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