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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아타나주아'…그는 왜 알몸으로 설원 달렸나

입력 | 2003-12-09 17:36:00

에스키모의 이야기를 에스키모의 시각에서 그려낸 영화 ‘아타나주아’. 장대한 북극 설원을 배경으로 사랑, 질투, 살인, 복수 등 인간의 원초적 감성을 담아냈다. 사진제공 백두대간


‘아타나주아’는 에스키모 감독이 연출하고 에스키모 배우들이 등장해 에스키모의 육성을 담아낸 영화다.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아타나주아’란 에스키모 말로 ‘빠르게 달리는 사람’(Fast Runner)이란 뜻. 이 영화는 오랜 세월 동안 구전으로 전해온 신화, 에스키모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아타나주아’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희로애락을 다루고 있다.

우리에겐 낯선 에스키모를 소재로 한 영화란 점에서 혹여 지루한 다큐 영화가 아닐까 하는 선입견을 줄 수 있지만, 이 영화는 그런 예상을 빗나간다. 북극의 장대한 설원을 배경으로 사랑과 시기심, 살인과 복수 등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 보편적 정서를 극적으로 그려내기 때문이다. 영화는 김수현 드라마를 뺨칠 정도로 속도감 있게 진행돼 2시간48분의 상영시간이 어느새 지나간다.

아타나주아와 숙명의 라이벌 오키. 예전에 부족의 지도자 자리를 놓고 다퉜던 라이벌 집안의 청년들은 이젠 한 여자를 놓고 맞서야 하는 운명이다. 어린 시절 오키와 정혼했던 처녀 아투아는 아타나주아에게 마음이 끌린다. 결국 아타나주아와 아투아가 결혼하면서 비극의 씨앗이 뿌려진다. 여기에 아타나주아가 오키의 여동생 푸야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으면서 두 집안의 악연은 점차 복잡하게 얽혀든다.

평소대로 온 가족이 한 텐트에서 잠을 자던 중 푸야는 옆에 누운 시아주버니를 유혹하다 쫓겨난다. ‘난 아무 짓도 안했는데 남편이 날 죽이려고 한다’는 푸야의 거짓말이 오키의 복수심에 불을 지른다. 오키 형제들의 습격을 받아 아타나주아의 형은 죽고 아타나주아는 타고난 달리기 실력으로 목숨을 건진다. 이 때 펼쳐지는 설원의 질주 신이 압권. 보복의 악순환은 시작됐지만 아타나주아의 복수는 현대인의 예상을 빗겨간다.

고래뼈로 만든 긴 칼과 물로 몇 시간만에 완성하는 이글루, 사냥도구, 개썰매, 텐트, 카약 등과 아기를 넣을 수 있는 모자가 달린 옷 등 볼 거리도 풍부하다. 신비한 전통놀이와 주술의식, 바다표범과 순록을 즐겨먹는 식습관 등을 통해 에스키모의 살아있는 삶을 느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에스키모의 삶을 아름답고 신비하게 미화하지 않고, 일상적인 생활을 솔직하게 그려냈다는 점이 이 영화의 미덕.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고 나면 숨 가쁜 드라마보다 에스키모들의 순박한 미소, 거친 자연환경 속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유머와 용기, 인내와 관용 등이 기억에 남는다.

가공하지 않은 원초적 자연과 인간을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영화. 감독은 자카리아스 쿠눅. 2001년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수상작. 1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