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업도 안면도 등지로 17년 동안 유랑하던 원전수거물 관리센터가 전북 부안군 위도에서 입지를 찾는 듯하더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부안군이 7월 원전센터 위도 유치계획을 발표한 후 폭력 사태, 자녀 등교 거부, 예산 낭비 등 심각한 후유증만 낳고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중심을 잃고 표류한 중구난방식 아마추어 행정이 빚은 참담한 실패다.
정부와 부안군은 주민 설득 과정 없이 덜컥 후보지 신청을 발표해 외부 세력과 연계한 주민의 집단반발에 속수무책이었다.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은 현금 보상 이야기를 꺼냈다가 취소해 주민의 신뢰를 잃었다. 과도한 인센티브 제공을 약속함으로써 장차 유사한 님비시설 건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같이 심각한 행정 실패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국책사업에 대해 법적 근거도 마련되지 않은 주민투표 이야기가 나오는가 하면, 국무총리는 느닷없이 전북도민 전체 투표 검토 방침을 밝혔다. 전북도민의 다수가 찬성하더라도 부안군민의 반대가 많으면 의미 없는 투표가 될 수밖에 없다.
산자부가 이번에 내놓은 대책은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강력한 의지 대신 골치 아픈 원전센터 입지 선정 문제를 총선 뒤로 미뤄 놓자는 계략이 엿보인다. 부안 주민투표가 부결될 경우 다른 지역에 문호를 개방한다고 하지만 부안사태를 지켜보고 나서 선뜻 용기를 낼 지역주민 또는 시장 군수가 있을지 의문이다.
부안에서 최종 주민투표 절차가 남아 있으나 현재의 주민 정서에 비추어 원전센터 건립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 다만 자유로운 찬반토론이 보장되고 찬성 주민이 위축되지 않고 투표장에 나올 수 있는 분위기에서 투표가 실시돼야 한다. 다행히 일부 주민단체에서 찬성운동을 벌여 한 가닥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안 주민투표에서 부결돼 다른 지역을 후보지로 검토하게 되더라도 충분한 주민동의를 전제로 선정 절차가 진행돼야만 부안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