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첸 분쟁이 ‘팔레스타인화(Palestinisation)’되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체첸과의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한 지 18개월이 됐지만 러시아와 체첸 사이에는 새로운 종류의 전쟁이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방송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자살 폭탄테러에 속수무책인 것과 마찬가지 양상이라는 점에서 이를 ‘팔레스타인화’라고 표현했다.
▽자살 테러가 주요 수법으로=최근 체첸 반군은 자살 폭탄테러를 빈번히 이용하고 있으며 러시아-체첸 접경지역뿐 아니라 모스크바까지 공격하고 있다. AP통신은 “모스크바를 겨냥한 테러 물결이 본격화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고 10일 보도했다.
9일 모스크바 심장부 크렘린궁 앞에서 발생한 폭발도 2명의 여성이 자행한 자살 폭탄테러로 추정된다. 모스크바에서 벌어진 자살 테러로는 올해 들어 2번째. 7월에는 모스크바의 한 음악 콘서트장에서 여성 자살 폭탄테러가 발생해 테러범을 포함해 18명이 사망했다.
모스크바 이외 지역과 체첸 내부에서도 올해 자살 공격이 잇따랐다. 5월에는 체첸 북부 지방에서 여성 2명이 몸에 지니고 있던 폭탄을 터뜨려 30여명이 사망하고 150여명이 다쳤다.
이달 5일에는 러시아 스타브로폴주의 통근 열차에서 여성 자살 폭탄테러가 발생해 40여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부상했다.
외신들은 “러시아와의 싸움에서 남편을 잃은 여성들이 체첸의 여성 테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당국은 올해 초 급진적인 체첸 분리주의자인 샤밀 바사예프가 여성 30명으로 구성된 자살 테러조를 훈련시켰다고 밝히기도 했다.
▽푸틴, 선거는 이겼지만=7일 실시된 러시아 총선에서 현 집권당이 압승해 내년 대선에서 푸틴 대통령의 재선이 확실시된다. 그러나 체첸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푸틴 대통령에게 큰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9일 크렘린궁 앞 자살테러 행위를 비난하면서 “러시아는 오늘을 포함해 날마다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AP통신은 “계속되는 테러는 러시아 당국이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AFP통신도 “총선을 전후해 러시아 당국이 이달 초부터 보안을 강화했는데도 테러가 잇따랐다”며 러시아의 치안 능력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다.
1859년 러시아에 강제 병합된 체첸은 1991년 11월 독립을 선언했으며, 이후 2차례의 전쟁 등 러시아와의 유혈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2003년 체첸 분리주의자들의 자살 테러 일지●
▽5월 12일:체첸 수도 그로즈니 서북부 지방정부 청사에서 차량 폭탄 테러. 54명 사망, 300여명 부상
▽5월 14일:체첸 북부 일리스한유르트 마을에서 여성 자살 폭탄 테러. 30여명 사망, 150여명 부상
▽7월 5일:모스크바 콘서트장에서 여성 자살 폭탄 테러. 18명 사망
▽8월 1일:러시아 남부 세베로오세티야공화국 모즈도크의 러시아 군병원에서 차량 폭탄 테러. 50여명 사망, 80여명 부상
▽12월 5일:스타브로폴주 통근 열차에서 여성 자살 폭탄 테러. 40여명 사망, 200여명 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