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픈 것은 참을 수 있어도 아픈 것은 못 참는다고 한다. 인간사회에서 질투심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말이다.
적절히 활용하면 질투는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자존심만큼 자신을 담금질하는 데 유효한 자극제도 드물다. 내가, 우리 회사가, 우리나라가 왜 뒤떨어져야 하는가를 속상해 하면서 치열한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향을 잘못 잡으면 치명적 독(毒)이 묻어 있다. 하향 평준화에의 유혹이다.
자기연마를 통한 경쟁력 향상에는 고통이 따른다. 반면 앞서나가는 사람이나 집단의 발목을 잡아당겨 끌어내리는 것은 힘들지 않다. 그들이 오늘을 만들어내기까지 들어간 피와 땀은 보지 않고 흠집 찾기와 음해에 나선다. 이런 문화 속에서 조직과 국가는 병든다.
2003년 한 해가 저물어간다. 새 정부 출범의 기대는 간 곳이 없고 무기력과 불안감이 짓누르고 있다. 한 사회의 성쇠(盛衰)를 결정짓는 핵심 분야인 경제가 특히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도 올해 우리 경제의 성적표는 낙제점이다. 한국은행은 연간 경제성장률이 2.9%에 머물 것으로 예상한다. 최근 세계경제가 빠른 속도로 살아나는 점을 감안하면 ‘아시아의 용(龍)’이란 말이 무색하다.
여기에다 금융과 기업, 가계 부문을 둘러싼 악재가 쌓여 앞날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없다. “올해 경제정책 운용이 비교적 무난했다”는 정부 고위인사들의 어설픈 현실인식은 우리의 머리를 더 무겁게 한다.
이제 정확한 진단을 하고 처방을 마련할 때다. ‘실패의 원인’을 압축하면 하향 평준화에 휘둘리고 이를 부추긴 정부와 사회가 아닐까. 최근 다소 달라졌지만 이 정부 들어 자주 문제가 된 전투적 노동운동과 반(反)기업 정서, ‘큰 것은 악(惡)’이란 분위기가 대표적이다.
효율성과 공평성의 상충관계(trade-off)는 경제학의 영원한 숙제다. 성장과 분배로 말을 바꿔도 무방하다.
효율성을 추구하면 공평성이란 측면에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 경제적 자본주의가 ‘1주(株) 1표(票)’의 원리라면 정치적 민주주의는 ‘1인 1표’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공평성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공평성을 너무 강조하면 실패가 기다린다. ‘함께 잘살자’란 이념 중 ‘함께’에 집착하면 같이 부유해지기는커녕 모두 나락으로 떨어진다. 중국의 도약을 가져온 것은 마오쩌둥(毛澤東)의 평등주의적 대약진운동이나 문화혁명이 아니라 능력 있는 사람과 지역부터 잘살자는 덩샤오핑(鄧小平)의 ‘선부론(先富論)’이었다.
“내 삶이 이건희(李健熙)나 빌 게이츠와 왜 이렇게 차이 나느냐”고 생각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이들이 없는 세상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이건희와 게이츠가 나오도록 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제때 봉급도 안 나오는 회사의 리더보다는 최소한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는 회사의 중간이 더 낫다.
잘나가는 기업이나 집단의 발목을 잡지 말자. 이들을 밀어주고 벤치마킹하면서 모두 성장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자. 우리와 후손들을 위해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시장경제에 입각한 상향 차별화 정책이다. 하향 평준화에 집착하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권순활경제부차장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