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옹 스님은 매일 오전 3시에 일어나 2시간 참선, 1시간 요가 등 규칙적인 생활을 해 90세가 넘도록 건강을 유지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13일 입적한 서옹(西翁) 스님은 성철(性哲) 스님에 버금가는 국내 대표적 선승(禪僧)으로 꼽힌다. 그는 가장 뛰어난 선지식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늘 1, 2위에 오를 정도로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큰스님이었다. 그는 90세가 넘어서도 선방 수좌들의 공부를 일대일로 점검해 주는 등 조계종 간화선(看話禪·화두를 드는 수행법)의 종풍(宗風)을 이었다.
7세 때 부모를 여의고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스님은 양정고보에 다닐 당시 불교 책을 탐독하고 출가를 결심했다. 경성제대에 진학하라는 주위의 권유를 뿌리치고 중앙불교전문학교(동국대 전신)에 들어간 스님은 이어 일본 교토 임제대에 유학해 묘심사 선방에서 3년간 정진했다.
스님은 1944년 귀국 후 백양사 선원 등을 거쳐 부산 선암사 선방에 머물면서 경남 통영 안정사 천제굴에서 정진하던 성철 스님을 처음 만나 평생 도반이 된다.
그 후 20여년간 선방에서 수행에 전념한 그는 1967년 백양사 쌍계루 부근 돌다리 아래에 흐르는 물살을 보고 깨달음을 얻어 ‘상왕은 위엄을 떨치며 소리치고 사자는 울부짖으니/ 번쩍이는 번갯불 가운데서 사(邪)와 정(正)을 분별하도다/ 맑은 바람이 늠름하여 하늘과 땅을 떨치는데/ 백악산을 거꾸로 타고 겹겹의 관문을 벗어나도다’는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스님은 항상 ‘참사람’(무위진인·無位眞人)을 강조했다. 본래 지니고 있는 참사람의 성품을 발견해 생사와 욕망을 넘어설 때 사바세계의 갈등과 투쟁은 사라지고,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이 서로 존중하는 평화로운 세상, 곧 불국정토(佛國淨土)가 된다는 것.
그는 1995년 ‘참사람 운동’을 시작해 그동안 백양사에서 40여차례 ‘참사람 수련회’를 가졌다. 스님은 참선 수행법을 정립하고 국내외 학자들에게 간화선의 종지를 알리기 위해 1998년 백양사에서 86년 만에 처음으로 무차대법회(無遮大法會·지위고하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법을 묻고 답하는 자리)를 열었다. 무차대법회는 2년 뒤 백양사에서 다시 열렸고 지난해에는 부산 해운정사로 장소를 옮겨 ‘한중일 국제무차선 대회’로 발전했다.
스님은 항상 부드러운 미소와 온화한 성품으로 제자와 신도들을 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백양사 주지 두백 스님은 “큰스님은 다른 사람에 대해 결코 나쁜 말을 하지 않았다”며 “‘저 사람 왜 저래’라고 하는 말이 가장 큰 질책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스님은 ‘사람이 속이 비면 겉을 화려하게 꾸민다’며 근검한 생활을 강조했다. 다른 총림처럼 방장실을 별채에 두지 않고 주지실 옆방에 뒀다. 또 백양사는 불전을 모으기 위한 이벤트성 불사를 거의 하지 않아 5대 총림은 물론 25개 교구 본사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절로 유명하다.
두백 스님은 “13일 평소처럼 아침 죽 공양을 하고 오후에 상좌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제 가야겠다’며 좌선하는 자세로 가다듬어 달라고 한 뒤 입적했다”면서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영결식과 다비식도 검소하게 치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