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유례없이 정치권을 향한 수사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정치검찰’의 오명을 받아 온 검찰이 최근 벌이고 있는 정치권에 대한 강력한 사정을 의식이라도 한 듯 경찰의 수사 강도도 만만치 않아 뵌다. 이 같은 수사 활동은 ‘정치의 시녀’ 정도로 치부되던 경찰의 중립성 확보를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한 일로 보인다. 특히 경찰이 수사대상으로 삼고 있는 군납비리 문제는 검찰이 수사 중인 대선자금 문제 못지않게 그 파급효과가 심각할 전망이다.
▼경찰 중립성 확보 계기 될것 ▼
기업은 그 회계 처리가 투명해야 하듯, 국가는 그 예산 사용이 투명해야 한다. 투명하지 못한 기업회계는 주주나 외국인들로부터 기업에 대한 불신을 낳게 되며, 투명하지 못한 국가예산 사용은 국가재정의 건전성에 대한 의혹만 낳을 뿐이다. 군납비리는 국가예산을 낭비하는 문제 외에도 군의 기강을 무너뜨린다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다. 군납비리로 낭비된 예산은 구입무기의 부실화와 군 전력의 약화로 이어지며, 궁극적으로는 군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것이다. 전 국방부장관이 뇌물수수 의혹을 받고 있고, 비리의 고리가 정치권 전반으로 점차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실체적 진실이 끝까지 밝혀져야 한다는 점이다.
검찰이 아닌 경찰에서 수사가 진행된다고 해서 국방부나 정치권이 이를 무시하거나 수사에 비협조적이라면, 이는 국민을 실망시키는 처사다. 또한 막강한 정치권을 대상으로 한 수사라고 하여 대충 형식적인 선에서 수사를 종료하려 한다면, 이는 경찰 수사의 의지를 의심케 할 것이다. 국민은 수조원대에 달하는 무기구입 비용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알 권리가 있으며, 이는 경찰의 엄정한 수사에 의해 보장될 수 있다. 소문으로만 나돌던 무기중개상과 군납공무원 및 정치권 인사들 사이의 결탁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제도 자체를 바꾸는 등의 대응조치를 통해 그 해결방법이 진지하게 모색될 필요가 있다.
군납비리가 보여주듯 국가의 예산을 ‘눈먼 돈’ 취급하는 안이한 집행태도는 근절돼야 한다. 군수분야에서도 경영합리화가 이뤄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군수분야의 중립적 전문가들이 국가예산을 합리적으로 집행하고, 이러한 집행을 중립적인 기관이 감시하는 체제가 구축돼야 군납비리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많은 국가예산을 사용하는 국방부가 가장 비효율적으로 예산을 관리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군납 비리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므로, 군납비리의 근절을 위해서는 기구와 인원의 전문화가 시급하다고 판단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에 적발된 군납 비리의 규모가 크다는 점에서 볼 때, 이 정도의 비리는 제대로 된 군 내부감찰 기능의 행사만으로도 적발할 수 있었어야 했다. 아직까지 구정권의 군납 비리를 밝힐 수 있을 정도로 감찰기능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않다면 감찰 분야 시스템도 합리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수백억원대의 정치자금이 오갔다거나 수억원대의 군납비리에 정치권이 연루됐다는 보도와 나란히 몇십만원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수백만명에 대한 기사도 나오고 있다. 하루하루를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기 위해 성실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이 느낄 박탈감에 대해서도 정치권은 진지하게 반성해야 한다.
▼軍 내부 감찰기능도 재점검을 ▼
한국의 군대조직은 지금 격변기에 와 있다. 남북긴장 상태와 국민의 군대라는 허울 좋은 구호 속에서 국가의 보호 속에 안주하던 과거의 행태에서 벗어나 이념의 갈등과 혼선 속에서 그 정체성과 방향을 다시 찾는 한편, 인권침해의 오명을 벗고 인권 사각지대의 무대를 탈출해야 하며, 합리화된 운영으로 국가예산을 보호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군의 탈정치화는 군인들의 지나친 정치의식을 경계하는 것이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군인이 정치권과 결탁해 국가예산을 낭비하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계속 추구돼야 한다. 군인은 사기를 먹고 사는 조직이어야 하며, 뇌물을 받고 움직이는 조직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류지태 고려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