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밤 서울 대학로 문예회관 대극장 로비에 조촐한 잔칫상이 차려졌다. 음료수와 간식이 마련된 테이블 한가운데에는 케이크가 놓였다. 8개의 긴 초가 꽂힌 케이크는 극장 안에서 상연 중인 연극 ‘옥단어!’가 끝날 때까지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은 차범석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이 희곡을 쓰고,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이윤택씨가 연출한 이 연극의 첫 공연이 있는 날. 차 회장의 팔순을 기념하는 이 연극이 진행되는 도중 주연 배우 남미정씨는 객석에 앉은 차 회장을 겨냥해 코믹한 동작을 선보이며 “내가 이렇게 하면 차 선생님이 싫어하시는데…”라는 ‘애드리브’를 날려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날 모처럼 많은 연극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차 회장의 팔순을 축하했다. 극작가 윤대성씨는 “외모가 비슷하다고 남들이 나를 보고 ‘작은 차범석’이라고 하는데 다음은 내 차례”라고 말해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원로배우 백성희씨는 “너무 감동적이어서 나도 무대로 뛰어 올라가고 싶었다”며 찬사를 보냈다. 연출가 이윤택씨는 “차 선생이 연출가의 뜻대로 작품을 만들도록 흔쾌히 허락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차 회장은 “나쁜 희곡을 재미있게 만든 것은 전적으로 연출가의 역량”이라고 화답한 뒤 “요즘 들어 연극계가 불황이라고 하는데 쉽고 재미있는 작품을 쓰는 좋은 작가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며 후배들을 향해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연극을 공연할 때 극단 단원들끼리 첫날 공연을 마친 뒤 저녁을 함께 먹는 ‘시(始)파티’를 하며 작품의 성공을 기원하는 것은 연극계의 오랜 관례. 하지만 이 날의 시파티는 극단 연희단거리패가 아니라 차 회장을 위해 마련된 셈이었다. ‘80년 연극 외길’을 걸어온 한 노 작가 덕에 이날 대학로 곳곳에서는 밤늦게까지 서로 차를 권하거나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연극인들의 모습을 적잖게 볼 수 있었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