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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가스파르와…' 프랑스 아이들은 어떻게 놀까?

입력 | 2003-12-16 16:37:00


◇가스파르와 리자이야기(7~10권) 안느 쿠트망 글 게오르그 할렌스레벤 그림 이경혜 옮김/각권 26쪽 내외 각권 6500원 내외 비룡소(만4~7세)

이 시리즈의 책은 거칠거칠한 터치 때문에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은 대단히 치밀하고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들이어서 눈이 간다. 강렬한 색감으로 대충대충 그려나간 듯하지만 잘 보면 볼수록 사실에 충실한 상태로 특징을 정확히 잡아내는 데 공을 들였고 배경마저 허술히 처리하고 넘어간 곳이 없다.

유럽, 특히 프랑스 아이들에게는 일상의 특징을 포착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질 이 책들은 우리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간접적인 체험의 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아용 ‘먼 나라 이웃나라’라 할 만하다.

곤돌라를 타고 다니며 베네치아 곳곳을 주유하게 한다든지, 퐁피두센터의 파이프 골조에서 사는 것으로 설정하여 이 유명한 복합문화공간을 일별하게 한다든지, 뉴욕 삼촌네 집에 놀러가 센트럴 파크나 맨해튼의 마천루 숲을 주유하게 하는 식으로, 어린이판 서구문화탐방서로서의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 같으면 그저 먼 나라의 설화적인 배경설정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런저런 해외체험의 기회가 늘어난 오늘날, 아이들이 가서 볼 곳에 대한 감을 갖고 떠나게 도와주는 여행가이드북이 되어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지식이나 간접적 체험의 폭이 아니라, 이야기의 전개방식이다.

뭔가를 가르치려는 의도를 성급히 드러내기는커녕 엉뚱하고 기발한 행동들을 통해 장난스럽게, 아주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는데 바로 우리 아이들의 눈높이와 딱 들어맞는다. 하는 일마다 야단맞을 짓만 하다가 어른들이 모두 낮잠을 자는 사이 벽에 걸린 그림을 오려 퍼즐을 만들고, 생일잔치에 가서 친구가 선물로 받은 인라인스케이트를 훔쳐왔다가 자기 게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천천히 갖다 두는데, 뭐 이쯤에서 등장할 법한 아름다운 반성 때문이 아니라 혼자 타려니 심심해서 그렇다는 식이다.

흔히들 교훈이 아닌 아이들의 일상을 섬세하게 포착한 책이 필요하고 좋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 책만큼 아이들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것도 드물 듯싶다.

지나친 일반화일지 모르겠지만, 영미의 그림책이 아련하게 아름다운 그림 속에서 감동을 전하는 데 주력한다면 프랑스 그림책은 삶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솔직하게 바라보게 하는 것을 중시하는 느낌이다. 만만치만은 않은 이 세상을 환상 없이 직시하되 거기에 함몰되지 않고 기지와 재치로 헤쳐 나갈 맹랑한 용기를 주는 이런 종류의 그림책이 우리나라에도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주미사 교양교직학부 교수·불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