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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2004]농업 개방…'농업위기'를 '기회'로

입력 | 2003-12-16 17:57:00


강원 화천군 상서면 신대리에서 쌀농사를 짓는 한상열(韓相列·47)씨.

농약 대신 오리로 병충해를 막는 유기농법을 사용하는 한씨는 쌀 시장 개방이 두렵지 않다. 값싼 수입쌀이 밀려오더라도 질 좋은 국산쌀의 소비는 줄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

“유기농법 쌀은 농약 범벅인 수입쌀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쇠고기시장이 열린 뒤에도 한우(韓牛)가 인기를 끄는 것과 같은 이치죠.”

한국 농업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본격적인 농업시장 개방을 앞두고 ‘위기’를 ‘기회’로 삼는 농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장 개방 압력에 무기력하게 굴복하기보다는 정면 대응해서 발전의 계기로 삼는 것이 낫다는 분위기가 농민들 사이에 조성되고 있는 것.

▽덩치를 키워야=현재 한국 농가의 평균 경작 면적은 가구당 1.45ha(1ha는 3000평). 일본(1.57ha)이나 대만(1.2ha)과는 비슷한 수준이지만 대규모 기계 영농을 하는 미국(120ha)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국산 쌀값(80kg 기준으로 16만7720원)이 미국산(4만4448원)보다 4배 가까이 비싼 것도 영세성 때문이다.

이 같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전북 익산시에 있는 한 농가는 경작 면적을 10ha로 늘렸다. 처음에는 노동력이 부족해 힘들었지만 볍씨를 직접 뿌리는 직파 농법과 이앙 재배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방법으로 노동력을 분산시켜 어려움을 극복했다.

안성농협 사업연합은 조직화를 통해 규모를 늘린 사례. 2000년부터 13개 단위 농협이 연합체를 구성해 사료나 농기계용 연료를 공동으로 구입하여 농산물 가격을 7, 8%가량 낮췄다.

▽경영마인드는 기본=대다수 전문가들은 농업시장 개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쟁력 있는 품목 위주로 작물을 개편하면 외국 농산물과도 경쟁할 수 있다”는 것.

경남 합천군에 있는 파프리카 작목반은 2000년부터 파프리카를 재배해 일본시장에 수출까지 하고 있다.

강원 화천군 상서면 신대리 토고미 마을 주민들은 특정 계층을 겨냥한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경쟁력을 높인 케이스. 이들은 2000년부터 오리를 이용한 유기농법 쌀을 생산해 시세보다 30% 이상 높은 가격에 팔고 있다. 또 오리가 논에서 벌레를 잡아먹는 장면을 관광상품화해서 부수입까지 올리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유기농법의 장점을 자연스럽게 홍보해 장기적인 고객 확충이라는 부수 효과도 얻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최세균(崔世均) 연구위원은 “장기간 선박으로 운송되는 외국산 농산물은 아무래도 국산 농산물보다 신선도나 안전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농업 개방을 기회로 이용하는 적극성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시간을 벌어야=한국 농업은 내년부터 ‘세계무역기구(WTO) 국제농업협상’, ‘자유무역협정(FTA)’, ‘쌀 재협상’ 등 전방위적인 농업시장 개방 압력에 직면한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공산품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으로서는 농업시장을 영원히 보호할 수는 없다. 농업시장을 지키려다 수출 주력 산업에 피해가 가면 국가 전체적으로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양승룡(梁昇龍) 교수는 “어차피 개방이 대세라면 한국 농업이 경쟁력을 갖추도록 협상 과정에서 개방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