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20여명의 철거민들이 19일째 농성 중인 서울 동작구 상도2동 재개발 철거 현장의 무너진 건물 위에 고드름이 앙상하게 달라붙어 있다. -권주훈기자
16일 오전 20여명의 철거민이 19일째 농성 중인 서울 동작구 상도2동 재개발 철거 현장.
지난달 28일 철거용역업체 직원들과의 격렬한 충돌이 벌어진 후 조성된 팽팽한 긴장감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검은 복면을 한 철거민이 나와 전선줄로 묶여 있던 농성 건물의 문을 열어주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마당을 뒤덮은 날카로운 철조망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통로만 남겨 놓고 마당 전체에 그물처럼 철사를 설치해 놓고 있었다.
복면을 한 철거민은 “용역업체 직원이나 경찰이 밤중에 들이닥칠 것에 대비해 최근 설치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안상 망루 부분은 공개할 수 없다”며 “땔감을 주워다가 피우며 불침번을 서고 있으며 밤에는 위험하기 때문에 누구도 출입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삽, 깨진 벽돌 등이 놓여 있는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어두컴컴한 현관이 나타났다.
안에 있던 40대 여성이 “일주일째 전기가 끊긴 상태라 촛불 생활을 하고 있다”며 “발밑이 어두우니 조심하라”고 일러줬다.
안으로 들어서자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퀴퀴한 냄새만이 코를 찔렀다. 문이 뜯겨나간 흔적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벽에는 “사람을 확인한 뒤 문 열어 주시오”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촛불 2개가 켜진 방안에는 신해영씨(30·여)가 한 살짜리 아기를 업고 앉아 있었다. 옆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두 남매가 놀고 있었다.
바닥에는 얇은 이불이 깔려 있었고 창문에는 외풍을 막기 위해 양탄자가 둘러 쳐져 있었지만 어두침침한 방안에는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신씨는 “전기가 끊긴 이후 난방기구를 쓸 수 없어 아이들이 모두 감기에 걸렸다”며 “지난번에 의사들이 약을 가져다 줬지만 좀처럼 낫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 아이의 코에서는 연방 콧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는 “우리는 생활보호대상자라 여기서 나가면 갈 곳이 없다”며 “아이들이 아파서 괴롭지만 남편과 함께 있고 싶다”고 말했다. 신씨의 남편은 얼마 전의 화염병 시위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
밥을 짓고 있던 조모 할머니(82) 역시 “집도 없어지고 살림살이도 다 부서졌다”며 “이제 나가서 뭘 하겠느냐”고 말했다.
철거민대책위원회 김영재 위원장(52)은 “이미 집이 헐려버려 추운 날씨에 달리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라며 “상황이 좋지 않아 어린이와 노인들을 내보내려 했지만 아무도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도 사람이 다치는 것은 원치 않지만 어차피 다른 곳으로 옮겨가 봐야 보증금 300만원으로는 또 쫓겨날 뿐”이라며 “제대로 된 해결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다같이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들이 농성 중인 망루에는 9일부터 가스 공급이 중단되고 11일에는 전기마저 끊겼다. 하지만 철거민들은 “요구사항을 들어줄 때까지 물러날 수 없다”며 “이곳에 들어오려 한다면 희생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대책위와 시공사인 N건설 사이에 지난 주말 처음으로 공식 협상이 이뤄졌지만 양측의 주장이 워낙 팽팽히 맞서 있어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철거민들은 영구임대주택 마련 및 가수용주택 건설을 요구하고 있지만 N건설측은 “민간에서 시행하는 재개발이므로 법적 의무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양측간 협의가 진행되고 있어 당분간 상황을 지켜볼 계획”이라며 “가능한 한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도록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