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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터 美대사관 신축 여부 18일 판가름

입력 | 2003-12-16 19:06:00

미국 대사관 신축 예정 부지에 남아 있는 고종의 아관파천길. 지표조사단은 1896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할 때 이 길을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사진제공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덕수궁 터에 미국 대사관과 직원숙소를 신축하는 문제를 판가름할 문화재위원회 매장문화재분과 회의가 18일 열릴 예정이어서 어떻게 결말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날 경복궁 내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열릴 이 회의에서 문화재위원들이 ‘덕수궁 터의 문화유적을 보존해야 한다’고 결정하고 문화재청이 이를 받아들이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미 대사관을 지을 수 없게 되고 그에 따라 정부와 서울시는 대체 부지를 물색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쟁점=대사관 신축 예정부지는 서울 중구 정동 1의 39 일대 옛 경기여고 자리인 1만3200여평. 1986년 ‘한미 재산교환 양해각서’ 체결을 통해 미 대사관이 소유하게 된 땅이다.

미 대사관은 이곳에 2008년까지 지하 2층, 지상 15층의 대사관과 8층짜리 직원용 아파트, 4층짜리 군인용 숙소를 지을 계획이다.

핵심 쟁점은 덕수궁 터였던 이곳의 문화유적 보존 문제. 이곳엔 1933년까지 조선시대 역대 임금의 어진(御眞·임금의 초상)을 모신 선원전(璿源殿), 왕과 왕비의 혼백을 모신 흥덕전(興德殿) 등이 있었다.

대사관 신축을 추진하던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곳의 문화유적을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에 부딪혔다.

이에 따라 미 대사관은 문화유적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올해 6월 한국문화재보호재단과 중앙문화재연구원에 지표조사를 의뢰했고 그 결과 궁궐터임을 보여주는 문의 주춧돌과 기와 석재 등 건물의 흔적과 각종 유물이 확인됐다.

지표조사단은 “궁궐터가 확실해 보존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건물 신축에 앞서 중요한 문화재가 확인될 경우 문화재위원회가 보존해야 한다고 결정하면 건물을 지을 수 없다.

▽논란=미 대사관측은 최근 문화재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지자 “직원숙소는 포기하고 대사관 건물만 짓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도 “유적은 보존하되 대사관 청사는 그대로 짓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미국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문화재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는 “문화유산임을 알면서 그 위에 미 대사관을 짓는 것은 역사 파괴 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시민단체인 ‘덕수궁 터 미 대사관 아파트 신축 반대 시민모임’은 “1986년 미국에 부지를 내준 것에 대해 정부가 사과하고 서울시는 대체 부지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 대사관은 만약 이 부지에 건축 불허 결정이 날 경우 서울시내 4대문 안에 대체 부지를 마련해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전망=18일 회의에서 유적 보존으로 결정이 날 가능성이 다소 높다.

한 문화재위원은 “부담스러운 사안이지만 유적이 확인된 이상 문화재를 보존하는 것이 문화재위원의 기본 임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 관계자도 “유적도 보존하고 대사관도 짓는 것이 좋지만 대사관을 꼭 덕수궁 터에 짓느냐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해 ‘불가’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매장문화재위원회 소속 위원들이 부담을 덜기 위해 판단을 유보하고 전체위원회로 최종 결정을 넘길 가능성도 있다. 또 정식으로 발굴한 뒤 그 결과를 보고 보존 여부를 최종 판단하기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정을 미루면 부담만 더 커진다는 판단이 지배적이어서 18일 결론이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는 불허 결정이 날 경우에 대비해 4대문 안에서 대체 부지를 물색해왔지만 마땅한 장소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는 덕수궁 옆 창덕여중 자리를 대체 부지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