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해 ‘전파 낭비’라고 혹평했지만 어제 있었던 최병렬 대표의 회견도 만족스러운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불법 대선자금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지겠다”고 해놓고도 “책임질 일이 무엇이 있는지 솔직히 모르겠다”고 했다. 반성한다는 최 대표의 의중이 무엇인지 헷갈린다.
최 대표는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편파적이어서 특검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5대 재벌 수사로 한나라당의 대선자금은 대부분 파악됐지만 노 후보 쪽은 한 푼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한다고 해도 저쪽은 임기 4년이 남아있는 ‘살아 있는 권력’이다.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차떼기’ ‘책 포장’ 등의 수법으로 500여억원의 불법 자금을 거둔 당사자가 특검을 서두르는 게 국민 눈에 어떻게 비치겠는가. 특검을 국회의장이 임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납득하기 어렵다. 박관용 의장이 한나라당 출신이니까 결국 자신들이 지명하겠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박 의장도 “권력분립의 측면에서 적절치 않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우선 검찰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잠적한 당 실무자들부터 찾아내 소환에 응하도록 하고, 당이 자체적으로 파악한 관련 자료가 있다면 검찰에 넘겨줘야 한다.
물론 노 대통령의 ‘대선자금 10분의 1’ 발언으로 특검은 불가피해졌다. 따라서 특검은 그것대로 추진하되 최 대표는 국정과 정치개혁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만으로도 정국은 불안하고 국민은 힘들다. 대통령 자신이 검찰과 특검의 조사 대상이 돼 버렸다. 야당이라도 국정을 챙기고 민생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최 대표는 지지부진한 정치개혁안부터 직접 챙겨야 한다. 이회창 전 총재가 스스로 불법 대선자금의 십자가를 메겠다고 나섰으니 상대적으로 부담도 던 것 아닌가. 그렇다면 거대 야당의 에너지를 어디에 쏟아 부어야 할지는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