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같이 길고도 긴 1년.’
그만큼 노무현 정부 첫 해, 사회 각 분야에서는 1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한 굵직굵직한 사건이 꼬리를 물어 우리사회를 혼란 속으로 빠뜨렸다.
출범 당시 참여정부의 구호는 화려했다. 3김 정치 종식, 권위주의 청산, 수평적 한미 관계 정립,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의 토대 구축 등….
참여정부는 나름대로 개혁 드라이브를 걸기도 했다. 국가정보원과 검찰 등 권력기관에 대한 개혁을 시도했고 자격 시비 논란에도 불구하고 고영구(高泳耉) 변호사와 강금실(康錦實) 변호사를 국가정보원장과 법무부 장관에 기용하는 파격 인사도 단행했다.
그러나 난마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안팎의 정세는 마치 ‘준비된 대통령, 준비된 정부’인지를 시험하는 듯 새 정부를 흔들었다.
이념 갈등도 심해졌다. 노 대통령은 미군 장갑차 여중생 치사사건으로 팽배해진 반미(反美) 기류, 북한 핵문제와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 등을 둘러싼 논란의 한가운데에서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모습을 보여 혼란을 가중시켰다. 8·15 경축사에서는 ‘자주국방’을 강조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재독학자 송두율(宋斗律)씨 초청 문제를 놓고 국론은 사분오열됐다.
새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은 국가 기강 해이를 초래했다. 화물연대 두산중공업 파업을 거치면서 정부의 일관성 없는 노동정책으로 노사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고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논란으로 인한 교육계의 분열과 대학수학능력시험 복수정답 파문으로 윤덕홍(尹德弘)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결국 사퇴했다. 또 부안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둘러싸고 정부와 부안군민이 대치 중인 가운데 윤진식(尹鎭植) 산업자원부 장관도 중도 하차했다. 초대형 사건도 연이어 터졌다. 대북송금 특검으로 박지원(朴智元)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DJ 정부 실세들이 줄줄이 구속됐고 현대 비자금 수사도중 현대아산 정몽헌(鄭夢憲) 회장이 투신자살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헌정 사상 초유의 집권 소수 여당의 분당 사태, 재신임 국민투표 논란,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와중에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양대 예종석(芮鍾碩·경영학) 교수는 “위정의 기본은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에게 신뢰를 줘야 하는데,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는 식이었다”고 진단했다.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노무현 대통령의 말말말2002년 12월 26일, 민주당 중앙선대위 당직자 연수회새 정부에서는 인사 청탁 잘못하다 걸리면 엄청난 불이익을 받도록 하겠다. 걸리면 패가망신이다.2003년 3월 9일, 평검사와의 토론회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3월 29일, 대통령비서실 직원 워크숍여러분 중 일부는 기자들과 술 마시고 헛소리하고, 나가서는 안 되는 정보를 내보내고, 정말 배신감을 느꼈다.5월 8일, 공무원에게 보내는 e메일 중개혁의 발목을 잡으려는 정치인, 지역감정으로 득을 보려는 정치인, 안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인은 잡초 같은 정치인이다.5월 13일, 방미 중 코리아 소사이어티 주최 만찬연설만약 53년 전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을 경우 나는 지금 이 자리가 아니라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5월 21일, 5·18 행사 추진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전부 힘으로 하려고 하니 이러다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위기감이 든다.7월 23일, 민원담당 공무원과의 대화민원을 하면 이리가라 저리가라 하니까 (민원인들이 공무원에게) ‘개××들, 절반은 잘라야 돼’라고 한다. 10월 13일, 국회 시정연설처음 최도술씨 사건에 대해서 보도를 보았을 때 눈앞이 캄캄했다.11월 5일, 원로지식인과의 오찬 새 시대를 여는 맏형이 되고 싶었는데 구시대의 막내 노릇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11월 19일, 한국청년회의소 임원단과의 다과회에서내가 다른 데선 덜렁덜렁하지만 북핵문제만큼은 정말 섬세하게 한발 한발 물어보고 짚어보고 정말 신중하게 한다. 속된 말로 통박을 굴린다.12월 14일, 4당대표 회동우리가 쓴 불법선거자금의 규모가 한나라당 불법자금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걸고 정계를 은퇴할 용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