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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포럼]유재천/방송의 매체비평 공정한가

입력 | 2003-12-21 18:31:00


계미년도 저물어 간다. 한 해를 마무리할 때가 되면 사람들은 지난 1년을 반성하고 새해에 고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언론계의 경우 그런 화두 가운데 하나가 ‘방송의 매체비평’이 아닐까 싶다. 물론 동종매체 또는 이종매체간의 상호비평은 바람직하다. 저널리즘의 질을 높이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는 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의 매체비평을 새삼스럽게 화두로 끄집어내는 데는 까닭이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방송의 매체비평이 비평의 규칙이나 문법에 충실했는지를 반성해 보고, 만약 그렇지 못한 측면이 있다면 바로잡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정신문 표적비평’에 매달려 ▼

지난 1년간 우리 방송은 현존하는 세계 어느 나라 방송보다도 주로 신문매체에 대한 비평을 활발하게 했다. 그 외형상의 활성화는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비평의 내용도 그에 걸맞은 수준을 유지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한마디로 우리 방송의 신문 비평은 비평의 규칙과 문법에 충실하지 못했다. 어떤 면이 특히 그러했는지, 하나만 꼬집어 말한다면 공정성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공정성이야말로 매체비평이 견지해야 할 최고의 규범이다. 우리 방송의 매체비평, 특히 신문 비평은 이 규범을 습관적으로 일탈해 왔다. 그렇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이유는 단 하나다. 표적 비평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이른바 ‘여론시장을 독점해 우리 사회의 여론을 지배한다는 보수 수구언론인 조·중·동’, 특히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망신시키기에 초점을 맞춰 집중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표적 비평은 목표 대상과 의도가 명백하므로 원초적으로 공정성을 견지할 수 없게 돼 있다. 편파적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또한 표적 비평은 현재의 언론이 얼마나 저널리즘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지의 문제를 따지기보다 흠집 들추기에 골몰하게 되기 때문에 과거지향적 비평이 되기 쉽다.

역사를 바로 세우고 과거에서 현재를 배워 한국 언론의 질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비판적 성찰은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일본 아사히신문이 1945년 11월 전쟁 중 일제 군국주의 선전에 일익을 담당했던 데 대해 집단적 책임을 지고 사장과 중견간부들이 사퇴했던 일은 우리 언론에 귀감이 아닐 수 없다. 그와 같이 거듭나기 위한 살신성인의 참회가 없었다는 것이 현재도 되풀이되고 있는 과거지향적 매체비평의 원인이기도 하다.

결단의 시기를 놓쳤다는 것은 우리 언론의 타성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렇다 할지라도 과거의 잘못을 들추기에 치중하는 매체비평은 표적을 공격하기 위한 전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뿐 아니라 다른 매체의 행적을 비판하려면 당시 자신들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자아비판이 앞서야 옳다.

12월 20일 KBS ‘미디어 포커스’에서처럼 자신들이 방송한 프로그램에 대한 방송위원회의 심의 결정을 두고 심의의 잣대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거나 몇몇 신문들의 문제 제기에 끌려가는 심의를 했다는 등의 자기 옹호적 태도를 공공연히 강조한 것은 올바른 매체비평의 자세가 아니다. 근거 없이 자신들의 잣대로 재단하는 자세야말로 비평이 아닌 독선주의의 본보기라 아니할 수 없다.

▼사실검증-반론반영 충실해야 ▼

그뿐인가. 비판의 대상이 된 인물들 또는 다루고자 하는 사건과 연관된 사람들의 의견은 아예 묵살하고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태도는 방송의 매체비평이 특정한 정치성향으로 여론을 조작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비평에서 비평자의 시각은 존중돼야 하지만 사실의 검증과 제시, 반대의견 개진의 기회 등을 생략한 평론은 설득력을 잃은 허위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뤄지고 있는 방송의 매체비평이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대의 대자보를 읽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새해에는 우리 방송의 매체비평이 저널리즘의 질 향상과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거듭났으면 한다. 언론들이 제대로 환경을 감시하는지, 우리 사회 각 집단의 현실과 문제를 제대로 반영하는지, 공론권 구현에 충실한지, 사회의 목표와 가치를 올바로 제시하는지 등 언론이 책임을 다 하고 있는지를 따져주는 비평이기를 기대한다.

유재천 한림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