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내리는 폭설이다
바람마저 잠든 깊은 산속
자꾸만 쌓이는 눈의 무게를
이를 악물고 견디던 소나무 가지 하나
마지막 비명을 내지르며
끝내, 자결한다
적막강산이 두 동강 나는 소리
나를 후려치는 죽비소리
솔잎처럼 퍼렇게 멍든
내 안에 깃들던 잔 시름들
화들짝, 산새처럼 놀라 깨어
일제히 먼 곳으로 날아가 버린다
-시집 '나의 키로 건너는 강'(시와 시학사)중에서
어느 시인이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고 말한 것처럼 ‘소리의 바탕은 적막이 마땅하다.’ 시끌시끌한 소음들 틈에서는 ‘적막강산이 두 동강 나는 소리’도, 정신을 후려치는 죽비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흰눈을 얹은 솔가지 하나 와지끈 부러지는 소리. 깃털처럼 가벼운 눈발이 무게가 될 줄 알았으랴. 네가 넘어지는 소리에 내 발걸음 고쳐 걷는다.
내 안에 잔 시름들도 저 눈발처럼 정신의 우듬지를 휘고 있으면 어쩌랴. 산새처럼 날아간 시름, 산새처럼 돌아올지라도 겨우내 저 깊은 적막강산에 들고 싶다.
반칠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