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민주 자민련 등 세 야당에 과연 정치개혁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이들이 엊그제 국회 정치개혁 특위에서 채택한 다수안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불법선거 단속 권한을 무력화하는 등 ‘돈 선거’ 추방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범국민 정치개혁협의회의 개혁안을 수용하기는커녕 오히려 단속하는 선관위 직원을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있는 조항까지 신설하는 등 개혁이 아니라 개악(改惡)에 가깝다.
시민사회단체와 선관위가 반발하는 등 논란이 커지자 목요상 정개특위위원장은 “개악은 없을 것”이라고 하고, 정개특위도 어제 처리방침을 늦춰 하루 이틀 더 논의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다수안 채택 과정에서 정치개혁에 뜻이 없는 야권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면 정치개혁은 늘 그래 왔듯이 또 한 차례의 논란에 그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만은 어물쩍 넘어갈 수 없다. 정개특위가 재논의에 들어가기로 한 만큼 이번에는 당리당략이나 현역 의원의 기득권이 작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선관위의 부정선거 감시기능을 현행대로 유지키로 한 데 그치지 말고 정개협 안을 최대한 수용해야 한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한창 진행 중인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는 검은돈으로 얼룩진 선거판의 추악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관련 정치인의 처벌은 물론 돈 선거를 추방할 수 있는 제도적 정비가 절실한 시점이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나 민주당 조순형 대표도 그동안 입만 열면 정치개혁을 강조해 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런 뜻이 정개특위 개정안에 그대로 반영되도록 해야 옳다. 특히 ‘차떼기’ ‘수표책’ 등 기상천외한 모금 방법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아온 한나라당의 경우 어느 당보다 제도개선에 솔선수범하는 것이 도리이자 살 길이다.
정개특위는 정치자금 투명화와 돈 안 쓰는 선거를 실현할 수 있는 진정한 개혁안을 내놓아야 한다. ‘돈 선거’ 개혁이 또다시 뒷걸음질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