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으로 1만원 이하의 초저가 화장품이 새로운 틈새시장 상품으로 뜨고 있다. 서울 명동의 초저가 화장품 브랜드 ‘미샤’ 매장에서 고객들이 아이섀도 시제품을 써보고 희망 가격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사진제공 미샤
“화장품을 써보고 가격을 직접 결정해주세요.”
지난주 서울 명동의 초저가 화장품 브랜드 ‘미샤’ 매장. 고객들이 아이섀도 ‘매직 아이 팁’ 시제품을 직접 써본 뒤 2000∼5000원까지 쓰인 희망 가격표에 스티커를 하나씩 붙였다. 1시간 정도가 지나자 ‘2000원’과 ‘3000원’이라고 쓰인 칸에 고객들의 스티커가 빼곡히 들어찼다.
고객의 의견은 고스란히 신제품 가격에 반영됐다. 미샤를 생산하는 에이블씨엔씨(대표 서영필)는 수도권 12개 매장에서 고객 7000여명의 의견을 분석해 신제품 아이섀도 가격을 2500원으로 정했다.
미샤의 전략은 ‘박리다매(薄利多賣)’. 화장품 500여종의 가격은 개당 3300∼8900원 선이다. 가장 비싼 미백 기능성 화장품이 8900원으로, 수입 화장품의 10분의 1 수준. 한번 상품을 사고 또다시 구매하는 고객 재구매율이 70%에 이른다.
값이 싼 대신 ‘거품’을 뺐다. 화장품을 단순한 플라스틱 용기에 담고 불필요한 포장을 없앤 것. 공장에서 직접 매장으로 화장품을 공급해 중간 유통단계를 줄인 것도 특징이다.
신제품 개발도 고객의 뜻에 따른다. 이 회사가 운영하는 여성 온라인 포털사이트 ‘뷰티넷’의 150만회원이 하루 평균 40∼50건의 신제품 아이디어를 인터넷에 올린다. 미샤의 화장품 대부분이 이 아이디어를 응용한 것.
이 회사는 당초 ‘뷰티넷’ 회원들에게 경품으로 주던 화장품이 폭발적 반응을 얻자 온라인으로 화장품 판매를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아예 이화여대 앞에 오프라인 매장을 냈다.
화장품시장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 5곳에 불과하던 미샤 매장은 현재 42곳으로 늘었다. 올해 예상 매출은 180억원 정도. 내년에 중국 프랑스 등 해외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
미샤가 성공하자 기존 화장품업체들도 저가 시장 공략에 나섰다. 한불화장품은 내년 4월경 아이섀도 5000∼6000원, 립스틱 1만원 정도의 저가 화장품 130종을 판매할 예정. 태평양도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 여성을 타깃으로 한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의 ‘라네즈 걸’을 내년 상반기 선보인다.
최근 서울 명동에는 3300∼8900원 정도의 화장품 600여종을 판매하는 ‘더 페이스 샵’ 매장이 문을 열었다. 명동의 롯데백화점 영플라자는 7000∼9500원 정도의 로션 클렌징 오일 등의 저가 일본 화장품을 내놨다. 로션 등 일부 품목은 품절될 정도로 인기.
태평양 김기탁 부장은 “불황으로 저가 화장품이라는 틈새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며 “가격 경쟁력과 함께 품질과 브랜드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용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