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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이강운/상장하려면 투명경영해야

입력 | 2003-12-23 17:52:00


“코스닥시장 등록요? 어디 무서워서 하겠습니까.”

한 증권사 투자은행 업무(IB)팀 관계자가 최근 ‘잘 나가는’ 정보통신 업체에 코스닥 등록을 권유했다가 그 회사 임원에게 들은 말이다. 자금 사정만 괜찮으면 ‘사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1999∼2000년에는 상장(上場) 또는 등록을 통한 기업공개만 하면 수십억∼수백억원대의 주식발행 초과금과 주가상승으로 인한 자본이득을 거머쥐는 사례가 많았다. ‘상장 프리미엄’이라는 신조어(新造語)가 생겨날 정도였다.

그렇지만 이제 ‘상장 프리미엄’은 거의 없어진 듯하다.

지난달 인터넷 경매업체 옥션의 대주주인 이베이가 옥션의 등록폐지를 추진해 눈길을 끌었다. 과거에도 스스로 상장(등록)폐지를 결정한 케이스는 적지 않았다. 모토로라가 99년 어필텔레콤을 인수한 후 등록을 폐지한 데 이어 전진산업 캡스 동방전자산업 케이디엠 케이그라스 등이 코스닥을 떠났다. 거래소시장에서도 99년 이후 쌍용제지 한국안전유리 대한알미늄 송원칼라 극동건설 등이 주식시장을 등졌다.

상장폐지를 결정한 회사들은 하나같이 외국인이 최대주주였다. 증권시장에서 자금조달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회사들이다. 국내 증시상황과 주주들의 불만에 구애받지 않고 독자적인 사업구상을 펼치겠다는 강력한 의사표현으로 볼 수 있다.

외국인들은 최대주주가 되면 상장폐지를 검토하고, 소버린처럼 주식매집을 통해 주요 주주로 부상하면 지배구조 개선 등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내걸고 경영진을 압박했다. 그런 가운데 자사주(自社株) 매입과 소각, 배당률 상승 등 주주이익 증진에 대해 상장사들이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안이 2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2005년부터 시행된다. 주식발행을 통해 주식시장에 명함을 내건 수많은 상장(등록)기업의 부담이 더욱 커졌다.

기업을 공개하면 회사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고 한다. 특히 경영진의 도덕성(주가조작 및 분식회계 등)에 대해선 냉엄하게 따지는 게 주식시장이다. 그래도 상장을 하겠다면 기업 스스로가 투명 경영과 주주가치 증진에 앞장서는 게 비용을 줄이고 주가를 끌어올리는 묘수가 되지 않을까.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