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에서 한때 ‘실종’됐던 실미도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강우석 감독의 영화 ‘실미도’. 사진제공 이노기획
‘실미도’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먼저 이 영화를 만든 강우석 감독에 대한 ‘두 가지 이해’가 필요하다. 그것은 또 이 작품을 둘러싼 ‘두 가지 오해’를 푸는 열쇠가 된다.
강 감독이 누구인가? 우선 이 작품은 10년간 ‘충무로의 파워 맨’ 1위를 다퉈온 그의 힘이 있기에 가능했던 영화다. 또 하나, 그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채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실미도’를 찍었다. 충무로에서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를 쓰면서 안성기 설경구 정재영 강신일 등 ‘배우로 인정받는 배우’들을 한 영화에 3개월이나 묶어둔 채 작품에 미치게 할 수 있는 감독은 그 밖에 없다.
이 영화는 ‘투캅스’ 1, 2와 ‘마누라 죽이기’ 등으로 90년대 상업영화를 대표했던 강 감독과 한때 우리 현대사에서 실종됐던 ‘실미도 사건’의 만남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남들이 보기엔 ‘궁합’이 맞지 않는 듯 보이는 만남에서 강 감독은 자신의 장기인 상업적 감각을 살리기보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전달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이 작품은 도입부에 1968년 1월21일 북한 124군 부대의 청와대 침투 사건과 “김일성의 목을 따오라”는 상부 지시아래 사형수 등 밑바닥 인생들이 남한 684부대(68년4월 창설됐다는 의미)에 참여하는 과정을 교차 편집시켰다. 감독의 의도는 명백하다. 이들은 남과 북이라는 구분에 따른 선과 악의 존재가 아니다. 다만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인간일 뿐이라는 것.
북파 부대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은 최재현 준위(안성기)는 연좌제에 연루돼 폭력배로 살다 사형수가 된 인찬(설경구)에게 “국가를 위해 다시 칼을 잡아줄 것”을 권유한다. 인찬을 비롯, 상필(정재영) 근재(강신일) 등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31명은 실미도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지옥훈련을 받으며 북파 명령을 기다린다.
그러나 국제 정세의 변화로 남북 화해 분위기가 감돌자 상부에서는 684부대의 북한 침투를 미루다 결국 부대 해체와 부대원들의 말살을 명령한다. 이에 부대원들은 자신들을 훈련시키던 기간병들을 살해한 뒤 섬을 점령한다. 이어 이들은 버스를 탈취해 인질극을 벌이며 청와대로 향한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오해’에 시달린다. 첫째 사건에 대한 충실한 접근은 이 작품을 영화라기보다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보이게 한다는 점이다. 둘째는 단역 배우의 얼굴까지 세세하게 담아내는 카메라의 시선은 영화를 이끌 ‘영웅’이 없는 것으로 비쳐지게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는 상업적 감각에 관한 한 ‘타고 났다’는 강 감독의 실수가 아닌, ‘의도된 선택’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가 클로즈업의 매력과 설경구라는 카리스마를 지닌 배우가 얼마나 상업적인지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그에겐 인공 조미료를 듬뿍 뿌려 감동을 쥐어짜는 작품, 한 인물이 좌지우지하는 영웅담을 만들 의도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실미도’의 등장인물은 모두가 주인공이다. 설경구 조차 ‘튈 수 없었다’는 의미에서는 조역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주인공은 ‘실미도 사건’ 자체와 강 감독이라는 역설이 가능하다. 강 감독의 선택이 맞았는지에 대한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남아 있다. 2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