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계열의 대표적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임화(林和·1908∼1953·사진)의 초기 시 6편이 발견됐다.
문학평론가 방민호 교수(38·국민대)는 임화가 보성중학교 4학년 때인 1924년 12월 8, 15, 22일자 동아일보 ‘문예란(文藝欄)’에 투고한 시를 최근 발굴했다. 당시 16세의 임화는 ‘연주대(戀主臺)’ ‘해녀가(海女歌)’ ‘낙수(落水)’ ‘실연(失戀) 1,2’ ‘소녀가(少女歌)’ 등 6편의 시를 초기 필명인 ‘성아(星兒)’로 발표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씨는 ‘임화연구’(문학사상·1989)에서 임화의 최초 시 발표를 매일신보 1926년 4월 14일자에 실린 ‘무엇찾니’로 보았는데, 이번에 발굴된 시는 이보다 약 1년 이상 앞서 발표된 작품들로 임화 시의 초기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동아일보 1924년 12월 22일자에 실린 임화의 시 ‘실연 1, 2’. -동아일보 자료사진
‘눈길을 잣밝으며/ 등을 넘어 갈ㅱ에/ 망보던 벌바람은/ 내맘을 ㅱ려// 젊은이 풋마음이/ 잔듸밧을 나갈 때/ 엿보든 도령네는/ 공연히우서.’(‘소녀가’)
방 교수는 “임화 문학의 생성기에 ‘연애’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며 “이번에 발견된 시들을 통해 감상적 연애시-다다이즘-프롤레타리아문학 등으로 이어지는 임화의 초기 행보를 밝힐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임화는 보성중을 중퇴한 뒤 잡지 ‘학예사(學藝社)’ 주간을 거쳐 1926년 카프에 가입해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광복 이후 ‘조선문학건설본부’와 그 후신인 ‘조선문학가동맹’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뒤 월북했고, 1953년 남로당계 인사들에 대한 숙청 때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품으로는 시집 ‘현해탄(玄海灘)’ ‘찬가(讚歌)’, 평론집 ‘문학의 논리’가 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