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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현장]내년 하반기 이주 앞둔 판교 세입자

입력 | 2003-12-24 18:51:00

판교신도시 부지에 포함돼 내년에 이주해야 하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한 세입자 가정. 근육이 마비돼 누워 있는 이인숙씨 옆에서 이씨의 어머니 이순례씨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성남=이재명기자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220의 1.

국지도 23호선에서 샛길을 따라 차로 5분 정도 들어가자 10여평 크기의 축사처럼 보이는 건물이 나타났다. 이곳에는 이인숙씨(45)를 포함해 3가구가 살고 있다.

대문 대신 비닐이 쳐져 있고 창문도 없었다. 이인숙씨와 이씨의 어머니 이순례씨(81)가 이곳으로 이주해 온 것은 20여년 전.

이씨가 전신의 근육이 마비되는 근위축성 측산경화증(일명 루게릭병)을 앓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들은 정부로부터 매달 50여만원을 받아 방세 10만원과 식비를 빼고 남은 돈 대부분을 병원비와 약값으로 쓰고 있다.

어머니 이씨는 “죽고 싶어도 딸을 돌볼 사람이 없어 죽을 수가 없다”며 “내년이면 이곳도 떠나야 하는데 막막할 뿐”이라고 말했다.

22일 토지주에 대한 보상이 시작되면서 판교신도시 개발이 본격화됐다. 내년까지 보상을 마치고 2005년 4월 착공에 들어가면 283만6000평에 2만9700여가구가 입주하는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보상가격을 둘러싸고 판교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특히 내년 하반기에 이주해야 하는 세입자들은 “이주와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며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판교에는 1600여 세입가구가 있다. 대부분 3, 4평 남짓 크기의 쪽방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들은 주거이전비와 임대아파트 입주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월 평균 가계지출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주거이전비는 4인 가족의 경우 760만원에 불과하다. 또 임대아파트는 2007년경에나 입주가 가능해 세입자들은 2년 이상 거주할 곳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

23일 한국토지공사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인 한 세입자는 “없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 있는 사람의 배를 불리는 것이 택지개발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한주택공사 관계자는 “대다수 세입자들이 5년 또는 10년 뒤 일반분양으로 전환하는 공공임대아파트의 입주권을 받아 음성적으로 입주권을 팔아넘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불법이지만 이들에게 이 방법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

판교개발추진위원회 김대진(金大振) 위원장은 “26일 오전 세입자 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열 계획”며 “세입자들에게 전세자금을 무이자로 융자해 주는 등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모두 길거리에 나앉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남=이재명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