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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스노우보더'…아! 눈이 시리다

입력 | 2003-12-25 17:38:00


‘트리플 엑스’ ‘야마카시’ 등 위험천만한 익스트림 스포츠를 다룬 최근 영화들의 공통점은 화려한 볼거리에 비해 이야기의 밀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올리아스 바르코 감독의 ‘스노우보더’는 ‘진기명기’ 차원보다 수준은 한 단계 높지만, 익스트림 영화의 한계를 벗어나진 못했다.

스노보드 챔피언 조시를 존경하면서 프로 스노보더를 꿈꾸는 프랑스 청년 가스파. 어느 날 아침 스노보드 연습을 위해 산에 오른 가스파는 챔피언 조시를 우연히 만난다. 가스파의 잠재력을 한눈에 알아본 조시는 그를 자신의 팀에 합류시킨다.

뜻밖의 기회를 잡은 가스파는 조시의 연인 에텔의 매력에 끌리면서 스위스에서 꿈에도 그리던 생활을 시작한다. 스노보드 대회가 다가오자 조시는 가스파에게 자신의 옷을 입고 결승에 대신 참가할 것을 종용한다. 에텔의 일기장을 훔쳐 본 가스파는 조시의 음모를 알아차린다.

영화 ‘스노우보더’는 익스트림 스포츠에 음모론을 뒤섞었지만, 사실은 10대를 겨냥한 청춘영화. “만날 스키만 타니?”하는 어머니의 꾸지람에 “스키와 보드는 달라요”하고 당차게 대답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을 자극한다.

깃털 베개로 서로를 사랑스럽게 때리는 청춘남녀의 로맨스와 난교파티를 연상케 하는 10대의 떼거리 문화는 랩과 메탈 음악과 함께 어우러진다.

특히 조시와 가스파 단 둘이 스노보드를 타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내려오는 동안, 서로를 가격하며 ‘맞장 뜨는’ 장면에는 젊은층에게 인기절정인 ‘배틀 문화(넉 아웃 룰로 이뤄지는 1 대 1 대결)’가 녹아 있다.

이 영화는 눈(雪)의 숨겨진 매력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스노보드가 지나간 설원에는 그림 같은 곡선이 탄생하고, 스노보드에 깎인 눈은 ‘사사사삭’하는 비명소리를 내며 가루를 흩뿌린다.

절벽에 켜켜이 쌓인 눈을 계단 내려오듯 스노보드로 ‘밟고’ 내려오는 장면은 스노보더라면 꿈에 그려볼 만한 장면이다.

그러나 드라마와 에피소드의 단조로움 때문에 끝없이 펼쳐지는 흰 눈밭이 중반 이후엔 지겹게 느껴진다. 눈은 꿈, 사랑, 질투, 음모가 용해된 복합적 상징이 되지 못한다.

조시의 음모는 주도면밀하지만, 정작 조시가 꾸미는 나쁜짓은 허탈할 정도로 소박하다. 에피소드는 여러 개지만 추려보면 같은 종류의 것들이 장소만 바꿔 되풀이 되고, 그때마다 배경에 깔리는 전자음악은 관객의 짜증지수를 높인다. 게다가 가스파가 조시의 음모를 너무 쉽게 알아차리면서 드라마는 긴장감을 잃고 주저앉아 버린다.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에텔의 감정선도 불분명하다. 에텔 역의 줄리엣 고도는 두 남자가 사생결단하고 싸우기에는 매력이 턱없이 부족한 듯 보인다. 2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