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테러와 전쟁으로 얼룩진 2003년. 지구촌 곳곳의 성탄절 축하 행사는 어느 해보다 어수선한 가운데 치러졌다.
▽교황, “사랑이 사악함을 물리치기를”=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83세의 노구를 이끌고 25일 0시(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서 자정미사를 집전하며 전 세계에 평화를 거듭 호소했다. 교황은 48개국에 생중계된 성탄 전야 메시지에서 “당신이 준 사랑의 메시지가 사악한 자의 덫을 물리치기를, 모든 인명이 소중함을 알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해 달라”고 기원했다.
미사를 앞두고 이탈리아 경찰은 테러 우려 탓에 성 베드로 광장 주변의 경계를 대폭 강화했고, 성 베드로 성당 입장객들은 금속 탐지기를 통과해야 했다.
교황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 이탈리아 전투경찰 군악대는 지난달 이라크 나시리야에서 폭탄테러로 사망한 이탈리아 병사 19명을 기리는 연주를 했다.
25일 아침에 열린 성탄미사에서도 교황은 신이 인성을 구원하고 테러와 전쟁을 응징해주기를 기원했다. 자정미사에서 분명하고 강한 목소리로 연설한 것과 대조적으로 성탄미사에서는 연설이 다소 힘에 부친 듯한 모습이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라크, 자정미사 포기=계속되는 저항세력과 미군의 충돌로 이라크 내 대부분 교회들은 자정미사를 포기하고 24, 25일 주간미사를 거행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바그다드 시내에서는 기독교인들이 많이 사는 남부 도라 지역의 가톨릭교회가 24일 오후 4시반 어린이들을 위한 성탄미사를 열었다. 이 교회 파레스 토마 신부는 “예상하지 못한 시간,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폭탄이 터지고 있다”며 “가장 간절한 소망은 평화”라고 강조했다.
▽성탄절 무색한 베들레헴=성탄절 전날인 24일 이스라엘은 순례자와 기독교인들을 위해 예수 탄생지인 베들레헴에 대한 통행제한을 완화했다고 예루살렘 포스트가 보도했다. 그러나 경제난과 유혈분쟁에 지친 베들레헴 주민들은 “축하할 일이 없다”며 냉담한 분위기였으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인 야세르 아라파트도 3년째 성탄절 이브 축하행사에 불참했다. 한편 해마다 성탄절 전날부터 산타클로스의 여행길을 어린이들에게 알려온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는 “산타가 올해는 경비가 대폭 강화된 캐나다와 미국 상공을 통과해야 할 것”이라고 24일 밝혔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외신 종합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