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스산맥은 정말 높다. 직접 가 보면 ‘깊다’는 말이 더 실감날 정도다. 산길 옆으로는 곳곳이 낭떠러지고 직선거리로 300m밖에 안 되는 깊은 계곡 하나를 건너느라 20km 이상을 꾸불꾸불 오르락내리락 돌아가야 하는 곳도 많다. 저 멀리 두세 줄기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은 인디오 화전민들이 밭을 가꾸는 곳이다.
남미대륙의 맨 윗부분 왼쪽에 위치한 에콰도르. 나라 한가운데를 종단하는 안데스산맥 한복판에 상가이국립공원이 있다. 안데스 깊숙이 자리잡은 해발 3000m의 도시 리오밤바에서 다시 인디오 마을을 여럿 지나 비포장길로 2시간반을 더 달려야 공원 입구에 닿는다. ‘에콰도르에서 가장 외진 곳이며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야생지대로 희귀동물이 대거 보호되고 있는 지역’이라는 여행책자 ‘론니 플래닛’의 설명 그대로다.
“수려한 자연, 2개의 활화산을 포함한 3개의 화산, 그리고 열대우림대에서 빙하대까지 다양한 생태계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는 것이 상가이의 자랑입니다.”
해발에 따라 다양한 생태계를 갖추고 있는 상가이국립공원의 두 모습. 3800m 고지의 태초 그대로의 평화로운 풍경(위)과 최근 산길을 새로 내면서 일부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 현장. -상가이국립공원(에콰도르)=홍권희특파원
빈센테 알바레스 관리소장(51)은 주저 없이 상가이를 ‘생태계의 보물창고’ ‘생태계 종합세트’라고 자랑한다. 그는 상가이가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된 1975년부터 이곳을 28년간 지켜온 ‘상가이 만물박사’다.
상가이국립공원은 총 5177km²로 강원도 면적의 30% 크기다. 해발 4800m 이상은 만년설로 덮여 있다. 지금도 화산재를 내뿜고 있는 퉁구라우아화산(5016m)이나 상가이화산(5230m)은 화산 연구자들이 꼭 찾고 싶어 하는 곳이다. 엘알타르화산(5319m)은 빙하로 덮인 칼데라(화산 함몰체)가 유명하다.
공원 아래쪽 해발 1000m의 계곡 깊숙한 곳은 아직껏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아마존 밀림지대다. 밀림에서 화산 꼭대기까지는 강수량과 해발에 따라 아열대, 온대 등 온갖 기후대가 펼쳐진다. 기후대에 따라 동식물도 달라지고 농작물도 달라진다.
상가이국립공원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 무엇보다 비포장 산길이어서 교통이 불편하고 잘 곳도 없다. 먹을거리도 마땅치 않다. 주민 이외의 공원 입장객은 몇 년 전까지는 연간 3000명가량 됐는데 2년여 전부터 공원 북쪽의 퉁구라우아화산이 재와 연기를 내뿜기 시작하면서 그나마 방문객이 급감해 요즘은 연간 700명밖에 안 된다. 관광객은 거의 외국인이다.
상가이국립공원은 에콰도르인들에게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안데스산맥을 따라 크고 작은 산과 숲, 계곡이 너무나 많기 때문인 것 같다. 상가이 일대에서 그중 유명한 곳은 공원 북쪽의 바뇨스라는 작은 도시. 노천온천이 있는 휴양지다. 여기는 외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고 관광지 분위기가 난다.
이처럼 사람의 발길이 뜸하지만 그래도 생태계의 가장 큰 위협은 바로 인간이다. 공원 입구에서 1시간가량 돌밭길을 내려가 보니 길가와 밀림 속에 나무집들이 나타난다. 여기서 인디오 화전민들은 공원 안팎에 불을 지르고 농사를 짓는다. 공원 내 나무를 베어내고 집을 짓고 가축을 키운다. 길을 내고 버스가 다니게 하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공원 깊숙이 들어와 살게 된다.
현재 공원 내 거주자는 1000명가량. 이들 주민과 공원관리당국간의 충돌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에콰도르 자연보호단체들은 “16세기 이후 스페인 정복자들이 이 일대에서 금을 캤다는 기록이 있다”며 “금 채광이 시작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알바레스 소장의 걱정은 공원 내 거주민이 많아지면서 차가 다니는 도로를 만들겠다는 압력이 거세진다는 점이다. 그를 따라 1992년의 도로공사 현장에 가 보니 돌산을 깎아 만든 길 윗부분의 돌이 길 아래쪽으로 무너져 내려 하얗게 깔려 있다. 상가이국립공원이 1983년 유네스코의 세계유산(공원의 절반인 2719km²)으로 지정된 지 10년도 안된 92년 ‘위기의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것도 바로 이 도로공사 때문이었다.
당시 공원 내에 개설된 도로는 8km 구간으로 거리는 짧았지만 길 아래 낭떠러지 끝의 강이 오염되는 등 직간접 피해가 나타났다고 유네스코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그후 공원 구역이 현재처럼 넓어지면서 공원 내 도로 길이도 대폭 늘어났다. 구아모테∼마카스 도로 중 공원 내 관통도로는 아직 완공되지 않은 상태다. 알바레스 소장은 “공원 땅은 4개 지방정부에 속해 있는데 지방정부들이 무계획적으로 도로공사를 벌이려 하는 것이 문제”라며 “생태계를 보호하면서 길을 만들 만큼 지방정부에 돈이 없다”고 덧붙였다.
에콰도르 정부의 환경 및 생태계에 대한 관심도 높지 않다. 상가이국립공원 안에 있는 수백 수천종의 동물과 식물에 대한 연구도 부족하다. 상가이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자료도 모자란 상황이다.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슬금슬금 잠식당하는 생태계의 피해실태 조사 역시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당장 무너지거나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자연생태계의 보고가 무관심 속에 방치돼 있는 것이 ‘안데스의 오늘’이다.
상가이국립공원(에콰도르)=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만세로 교수-알바레스 공원 관리소장 인터뷰 ▼
상가이국립공원의 보호 실태에 대해 과야킬 소재 테크놀로지코 대학의 이네 만세로 교수(관광학과)와 상가이국립공원의 빈센테 알바레스 관리소장에게 들어보았다.
―‘상가이’는 무슨 의미인가.
▽이네 만세로 교수=화산이 언제 폭발할지 몰라 불안하다는 뜻의 인디오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너무 험해서 사람이 들어가지 못한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다.
▽빈센테 알바레스 소장=오랜 옛날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분출했는데 용암이 흘러가다 슈아라스 또는 히바로스라는 동네 앞에서 멈췄다고 한다. 그래서 피해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의미의 ‘상가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는 유래가 있다. 즉 고마운 산이라는 뜻이다.
―상가이의 가치는 무엇인가.
▽만세로 교수=해발 1100∼2300m, 2300∼3300m, 3300m 이상 등 각기 다른 생태계가 한꺼번에 모여 있는 ‘3층 건물’이라고 보면 된다. 매우 진귀한 곳이다. 화산지역에 사는 콘도르, 안경곰, 개미핥기 등 멸종위기에 처한 여러 동물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이런 가치 때문에 유네스코에서도 보존하려고 하는 것이다.
▽알바레스 소장=상가이는 세계의 허파 중의 하나이다. 생명의 근원이다.
―상가이의 생태계 파괴요인은 무엇인가.
▽만세로 교수=상업이나 관광코스 개발을 위해서 도로를 내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문제는 무계획적으로 공사를 한다는 점이다. 더 심각한 것은 상가이 국립공원 남쪽 끝 부분을 동서로 관통하는 송유관 건설이다. 공사가 2001년 시작됐는데 이에 대한 감시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큰일이다. 우리나라는 석유로 먹고 사니까 송유관을 건설할 필요가 있지만 환경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과거의 송유관에서도 기름이 흘러 문제가 된 곳이 여러 군데 있다.
▽알바레스 소장=공원 내 도로개설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20년 전엔 중앙정부와 언론의 힘을 통해 도로공사를 막기도 했는데 요즘은 점점 어려워져간다.
―상가이는 잘 보호되고 있는가.
▽만세로 교수=계획만 있고 실행은 없다. 에콰도르나 다른 나라 정부도 관심이 없다. 결국 돈 문제다. 대도시와 가깝다면 관광객 입장료라도 받아서 재정을 충당할 텐데 상가이는 너무 외진데다 안내인 없이는 들어갈 수도 없는 형편이어서 그것도 어렵다.
▽알바레스 소장=공원관리에 필요한 적정인원은 50명인데 현재 2명의 생물학자(본인 포함)와 13명의 관리직원뿐이다. 감시초소에 최소 2명이 있어야 하는데 1명일 때도 있고 아예 없을 때도 있다. 적정한 관리예산은 연간 50만달러인데 현재 1만5000달러 수준이어서 주민에 대한 생태계 보호교육 등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유네스코 등의 지원도 요즘은 없다.
상가이국립공원(에콰도르)=
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