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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당신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

입력 | 2003-12-26 17:16:00


◇당신은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전 2권)/아르민 퐁스 엮음 김희봉 이홍균 윤도현 옮김/1권 308쪽 2권 404쪽 각권 1만4000원 한울

인간과 사회에 대한 가장 의미심장한 통찰 가운데 하나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언명이다. 인문학이 ‘인간’에 주목해 왔다면, 사회과학은 ‘사회’를 주로 탐구해 왔다. 우리 삶이 로빈슨 크루소처럼 고립된 게 아닌 한, 사회는 인간에게 불가피한 존재 조건이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이 가족 조직 국가, 나아가 세계체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이 사회가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 변화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우리는 대체 어떤 사회에 살고 있으며, 이 사회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사회과학의 기초학문인 사회학에서 이 질문만큼 절실한 문제는 아마 없을 것이다. 사회학의 창시자인 콩트에서 시작해 뒤르켕과 베버, 그리고 최근 푸코와 하버마스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대가들이 평생에 걸쳐 고심한 이슈도 이 질문이었다. 이 책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대표적 인문사회과학자 24명의 흥미진진한 답변을 담고 있다.

오늘날 우리 시대를 한마디로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후기산업사회’ ‘정보사회’ ‘포스트모던사회’ ‘위험사회’ ‘세계사회’ 등 어느 하나의 이론적 개념만으로 그 전체성을 아우르기에는 현대사회가 보여주는 스펙트럼이 너무나 현란하다.

이 책의 첫 번째 미덕은 바로 이런 현대사회에 대해 다채로운 이론적 접근을 펼친다는 데 있다. 독자들은 대니얼 벨의 후기산업사회론, 앤서니 기든스의 근대사회론,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 아미타이 에치오니의 책임사회론 등 사회학 담론은 물론 철학자 악셀 호네트의 균열사회론,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의 포스트모던사회론 등 이 시대를 바라보는 인문사회과학 전반의 다각적인 시선들을 엿볼 수 있다.

더불어 개별 이론가에 따라 생애, 개념, 공통질문, 인터뷰로 이뤄진 이 책의 구성 또한 흥미롭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자 랄프 다렌도르프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넬슨 만델라이며, 공동체주의자 에치오니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케테 콜비츠, 문학작품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라는 사실은 이채로운 이야기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종래의 딱딱한 교과서적 지루함에서 벗어나 있다.

이 책의 백미는 두 가지다. 하나는 공통질문,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 미래사회는 어떤 모습인가에 대한 이론가들의 간결한 답변이다. 다른 하나는 동시대 사회변화에 대한 질문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생생한 인터뷰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우리는 벨과 다렌도르프, 기든스와 호네트, 벡과 잉글하트의 견해를 자연스럽게 비교할 수 있다. 게다가 어느 하나의 이론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거나 거부하는 게 아니라 개별 이론의 핵심을 객관적으로 전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판단을 맡기는 편자의 배려 또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오늘날 현대사회가 어느 하나의 개념으로 규정되기 어려운 거대한 퍼즐이라면, 그 퍼즐 조각들을 맞추는 데 이 책은 의미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1권과 2권에 등장하는 학자들이 주로 독일어권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편자는 앞으로 발간될 3권에서 영국 미국 프랑스 스페인 학자들을 다루겠다고 예고하지만, 오늘날 탈구조주의가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할 때 프랑스 사회학자들이 다뤄지지 않은 것은 여전히 아쉽다. 시대진단의 사회학이란 것도 어떤 이론적, 방법론적 원칙에 기초하느냐에 따라 그 방향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푸코와 부르디외로 대변되는 프랑스 사회학에 대한 탐색은 매우 중요하다.

이 책 1권은 1998년 돌연 세상을 떠난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에게 바쳐졌다. 편자는 1권 서두에서 루만이 남긴 말, “우리에게 확실한 것은 우리가 과거라고 기억하는 것이 미래에도 변함없이 재현될 것인지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를 인용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또 어디로 가는가.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kimhoki@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