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의 법률고문을 지낸 서정우(徐廷友) 변호사가 대선을 앞두고 삼성그룹에서 받은 112억원 상당의 국민주택채권 행방을 둘러싼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검찰은 이 채권의 행방과 사용처 등에 대해 전혀 확인된 것이 없다며 유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증폭되는 ‘채권 미스터리’=서 변호사는 검찰 조사에서 삼성에서만 채권을 받은 이유에 대해 “운반이 간편한 채권 형태로 받기로 합의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LG와 현대자동차의 경우 트럭까지 동원하는 등 현금 수송 부담을 감수했던 한나라당이 유독 삼성의 경우에만 ‘운반 편의’를 고려했다는 것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검찰은 밝혔다.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 한나라당은 SK 등 기업측에 ‘얼마를 어떻게 달라’는 식으로 액수와 형태를 특정해 돈을 요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자금 추적을 피하고 즉각 선거자금으로 투입할 수 있는 현금을 주로 고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어느 대기업보다 현금 동원력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진 삼성이 무기명채권 형태로 자금을 건넨 것은 한나라당의 요구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검찰은 한나라당이 삼성에서 채권 형태로 돈을 받은 것은 ‘별도의 목적’에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며 ‘은닉’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대책회의 의혹=서 변호사는 자신에게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 오는 것을 감지한 지난달 중순경 서울 모처에서 이 전 후보의 사조직인 부국팀 회장이었던 이정락(李定洛) 변호사와 유승민(劉承旼) 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 등과 대책회의를 가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서 변호사는 12월 8일 긴급 체포됐다.
검찰은 이 모임에서 또 다른 불법 대선자금 모금에 대한 대책이나 이 전 후보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서 변호사를 상대로 대책회의 내용을 집중 추궁하고 있다. 필요하면 이 변호사와 유 전 소장을 불러 조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삼성이 제공한 채권이나 대책회의의 내용이 불법과 관련이 있을 경우 한나라당에 또 한 차례 후폭풍이 몰아칠 가능성이 있다는 게 검찰 주변의 시각이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