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새벽 이란 남동부를 강타한 강진은 2000여년 전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고도(古都)였던 밤을 폐허로 만들었다. 이란 정부 당국은 케르만시(市)에 비상대책본부를 세우고 헬리콥터 등을 동원해 피해지역으로 구호요원과 물자를 급파했지만 병원건물까지 대부분 붕괴된 데다 현지 의료인력도 사상자가 많아 구호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벽에 들이닥친 재앙=터키 민영 NTV는 이날 “주민들이 도시 곳곳에서 건물 잔해에 깔린 시신을 수습하고 있으며 거의 모든 가옥이 폭격을 맞은 것처럼 파괴됐다”며 “구호물자가 턱없이 부족해 이재민들이 190km 북쪽의 케르만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통신과 전기 수돗물 공급이 모두 끊겼으며 거리는 앰뷸런스와 미처 수습되지 못한 시신들, 가족을 잃은 이들의 비명과 울음소리로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특히 지진이 새벽에 발생해 잠을 자던 가족 전체가 몰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국은 무전기와 위성전화를 통해 현장과 교신하고 있지만 정확한 피해 집계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슬람의 국제적십자에 해당하는 적신월사는 현장에 임시거처용 텐트를 설치하고 개를 이용해 건물 더미에 깔린 시신 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란 내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국제사회에 탐지장비와 의약품 식량 등의 지원을 요청했다. 러시아는 지진 발생 수시간 뒤 구호품과 구호요원을 실은 비행기 두 대를 현지로 급파했으며 독일과 벨기에 스페인도 인도적 지원에 나섰다.
▽사라진 고대 유적=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밤은 고대유적이 도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유서 깊은 도시. 밤의 상징이자 ‘이란 유적의 보석’으로 불리는 고대도시의 유적 ‘아르게 밤’은 이번 지진으로 완전 붕괴됐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아르게 밤은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멸망한 페르시아 제국의 부흥을 꾀했던 사산왕조의 핵심 유적지다. 이 거대한 성(城)은 붉은 진흙과 짚으로 만들어진 탓에 지진 피해가 컸다.
이란은 매일 1건 이상의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하는 지진 다발국가. 1972년 4월 남부에 리히터 규모 7.1의 강진이 발생해 5374명이 사망하는 등 30년간 공식 집계된 사망자(이번 지진 제외)만 6만800여명에 이른다. 한해 2000명 이상이 지진에 희생된 셈이다. 90년 6월 21일에는 카스피안 지역에서 리히터 규모 7.7의 강진으로 3만5000여명이 사망하고 10만명이 부상했으며 50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최악의 재난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외신들은 이란의 지진 대비태세가 전근대적이어서 매번 대규모 피해를 ‘눈뜨고 당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테헤란대의 한 교수는 “지진이 발생하는 것은 모두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안일한 인식이 피해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