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회적 갈등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내년에 갈등현안 기본법을 제정할 것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는 사회적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하기 위한 정책제안 기구로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출범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합의와 설득을 통해 승복하는 문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반가운 일이다. 정부가 대화와 논리적 검증 과정을 거치며 상대방 의견을 수용해 가는 선진문화 만들기에 직접 나서겠다니 기대가 크다.
여기서 노 대통령과 현 정부가 잊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올 한 해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이분법적 갈등’의 한복판에는 대부분 노 대통령 본인과 정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최근 사례만 보자.
노 대통령은 지난주 조계종 수뇌부를 찾아가 사패산터널 공사 재개의 불가피성을 설득했다. 뒤늦게나마 현실을 인식하고 결연한 국정수행 의지를 밝힌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뒤다. “이제 와서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공론조사를 포기한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환경단체와 불교계의 반발이 그것이다.
이들을 ‘집단이기주의’로 탓할 수 있을까. 지난해 대선후보 시절의 공사 백지화 공약, 최근의 노선 재검토 및 공론조사 약속 등으로 5400억원을 날리면서 불교계 환경단체 지역주민간의 불신과 반목을 부추긴 것은 과연 누구였는가.
얼마 전 마무리된 노사개혁 로드맵도 마찬가지다.
조정전치주의와 직권중재조항 폐지에 이은 ‘긴급복귀 명령제’ 백지화는 결국 사용자의 대항권 박탈, 이에 따른 노사분규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손볼 그들’(재계)과 ‘보호받을 우리측’(노동계)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면 이런 결론은 도저히 나올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오죽했으면 로드맵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인사가 “노사 어느 쪽도 노동법 개정을 적극 요구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핵심 이슈로 삼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절차”라고 비판했을까.
노 대통령의 내년 총선을 대비한 ‘한나라당 대 열린우리당과 청와대의 양강(兩强) 구도’ 발언이나 노사모 모임에서의 ‘그들’과 ‘우리’의 구분, 그리고 “위대한 여러분, 떨쳐 일어납시다” 등은 정국을 철저히 ‘적’과 ‘동지’라는 이분법적 극한 대결구도로 만들고 있다.
이처럼 사회를 강자와 약자, 적과 나, 선과 악으로 분류하는 것은 ‘인위적이라도 적을 만들어라’ ‘적과 동지를 구분하라’ ‘전위대를 양성하라’ ‘보수언론을 공격하라’는 사회주의적 리더십의 전형(레온 트로츠키, 1925)으로 이미 그 실패가 입증됐다.
이제는 이념의 과잉을 억제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통합의 리더십이 글로벌시대 다원주의적 대의민주제의 지표가 되고 있다.
보수(공화당)와 진보(민주당)로 뚜렷이 구별돼 온 미국이 지난 대선 때부터 교육 복지 노사관계 등에서 정책 대립의 전선을 허물고 상호 벤치마킹을 통해 통합의 정치로 수렴해 가고 있는 것이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딕 모리스, 2003)
러시아 외교관 카를 베베르가 “대한제국 황실과 정치인들의 편싸움으로 사회질서가 문란하며 지도자들이 러시아 일본 기타 열강과의 관계에서도 사사로운 고집을 꺾지 않아 국제관계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알지 못한다”는 서신을 본국에 보낸 것이 정확히 100년 전인 1903년의 일이다.
노 대통령과 정부는 100년 전으로 역사를 돌려놓는 어리석음을 피해야 한다. “그들은 아직도 승복하지 않는다”는 식의 특정집단과 이념에 기울어진 분열주의가 아니라 통합 지향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반병희 정치부 차장 bbhe42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