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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임명철/이 아이들 좀 안아주세요

입력 | 2003-12-29 18:19:00

임명철


필자가 서울 강남구 포이동의 한 보육원을 찾기 시작한 것은 1998년 12월 말부터였다. 그때 보육원은 밖에 나와 있는 사람이 전혀 없고 건물만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황량한 모습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2층에 올라가 보니 여러 칸의 방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문을 여니 옹기종기 앉아 있던 아이들은 자기 부모를 만난 것처럼 반갑게 필자의 품으로 달려왔다. 처음 만난 낯선 사람을 보고도 그렇게 기뻐하던 아이들의 얼굴은 천진난만하기 그지없었다. 필자는 아이들에게 과자를 나눠주고 1층 사무실에서 원장님을 만나 아이들이 기거하는 방이 춥지 않도록 연료비에 보태달라며 얼마 안 되는 돈을 기부했다. 집에 돌아오는 중에도 품에 안겼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나라 경제가 어려워서 그런지 2003년 세모(歲暮) 풍경은 유난히 썰렁하다. 70대의 나이에 고정수입이 없는 필자 역시 예전에 비해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긴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마다 연말에 찾아가는 보육원에 빈손으로 갈 수도 없어 한동안 고민했다. 다행히 정부가 매년 한번씩 노인을 위해 교통비조로 지급하는 10만원의 지원금이 생각나 우체국에서 돈을 찾았다.

기쁜 마음으로 필자는 12월 23일 그 보육원을 다시 찾았다. 여전히 아이들은 필자를 친부모, 친할아버지처럼 따랐다. 사람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너도나도 “저 좀 안아 주세요”라며 필자의 손과 어깨에 매달렸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부모의 따뜻한 품안에서 사랑 받아야 할 나이에 아이들끼리 생활해야 하는 상황이 가슴 아팠다. 한편으로 아이를 버린 비정한 부모가 밉기도 하고 우리의 각박한 현실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보육원 아이들의 점심시간. 식당의 긴 테이블에 마주 앉은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밥과 반찬을 들고 맛있게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려는 필자를 향해 식당 유리창 밖으로 손을 흔들었다. 보육원을 나서면서 우리 사회에 소외된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임명철 서울 강남구 수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