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측근 비리에 개입한 정황이 검찰 수사를 통해 확인됨에 따라 노 대통령에 대한 조사와 사법처리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이 29일 노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安熙正)씨 등을 기소하면서 발표한 중간 수사 결과에는 노 대통령이 측근들의 다양한 비리에 관련돼 있음이 드러났다. 노 대통령이 용인땅 ‘위장매매’를 통한 장수천 채무변제 계획을 사전에 알았다는 대목과 선봉술씨의 손해보전을 지시한 대목은 노 대통령이 위법성을 알고서도 이를 묵인했거나 불법을 지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 선씨가 지난해 대선을 전후해 또 다른 측근들로부터 거액을 받은 것이 노 대통령의 지시와 관련됐다는 사실과 함께 장수천 부채의 일부가 불법 자금으로 변제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광재씨나 여택수씨 등이 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돈을 받은 정황은 노 대통령이 측근들의 불법 자금 수수를 조장했거나 묵인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것이어서 정치권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그러나 “(노 대통령의 관련성에 대해) 나름대로 결론을 갖고 있지만 대통령 조사는 지금 시점에서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과 관련된 의혹은 밝히되 처벌을 전제로 한 형사소추는 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에 대한 의혹은 내년 1월 발족할 특별검사팀에서 다시 조사할 것으로 예상되며 그 결과에 따라 노 대통령에 대한 조사 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진영상가 손실 보전 ▼
노무현 대통령은 선봉술씨가 진영상가 경매에서 본 손해 보전을 위해 민주당 부산 선대위에서 보관중인 지방선거 잔금 2억5000만원을 사용하도록 최도술씨에게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 대통령의 고향 친구인 선씨와 오모씨는 노 대통령이 투자한 장수천이 한국리스여신에서 돈을 빌릴 당시인 1997년 3월 경남 김해시 여래리 진영상가의 땅과 건물을 담보로 제공했다.
장수천이 빚을 갚지 못해 2001년 4월 이들이 담보로 제공한 상가는 당시 감정가가 20억여원이었으나 경매에 들어가 11억3000만원에 팔렸다.
이들이 지난해 4월 진영상가 경매로 본 손해를 보전해 줄 것을 노 대통령의 측근들에게 강력히 요구하자 노 대통령은 지난해 5∼7월 최도술씨와 안희정씨에게 손해를 보전해 줄 것을 지시했다는 것.
이에 따라 지난해 7월 안씨는 선씨에게 5억원, 오씨에게 6억원을 각각 보상해 줄 것을 약속했으며 최씨와 안씨는 지난해 7∼12월 선씨에게 7억5000만원과 7억9000만원 등 두 차례에 걸쳐 총 15억4000만원을 건넸다.
안씨와 최씨가 이들에게 건넨 돈은 대부분 그 출처가 불법 자금으로 추정된다고 검찰은 전했다.
이중 오씨가 6억원, 선씨는 4억9000만원을 받았다. 결국 안씨와 최씨가 받은 불법 자금은 장수천 빚 때문에 노 대통령의 측근에게 다시 유입된 셈이다.
진영 땅 지분은 노 대통령의 형인 건평씨도 갖고 있었지만 손실 보전은 선씨와 오씨에게 해줬다는 것.
선씨와 오씨에게 손실을 보전해주고 남은 돈 4억5000만원은 강금원씨가 받았다는 것이 검찰의 결론이다.
검찰은 “노 대통령이 당시 추상적으로 지시를 했지만 ‘개괄적’으로는 대통령도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용인 땅 거래과정 ▼
검찰은 노 대통령이 안희정, 강금원씨로부터 이기명씨의 용인 땅을 매매하는 형식을 빌려 장수천 채무를 갚겠다는 사전 보고를 받은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용인 땅 거래가 위장 매매라고 보고 있다. 이씨가 땅을 강씨에게 파는 형식으로 돈을 받아 장수천 채무 18억8500만원을 갚았다는 것이 검찰의 수사 결과다.
강씨 등은 검찰에서 용인 땅 매매 계약을 해지한 이유에 대해 “부지에 송전탑이 들어섰고 땅값이 올라 특혜라는 오해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들이 처음부터 송전탑이 들어서는 것을 알고 있었고 △땅값도 오르지 않았으며 △강씨에게 땅의 소유권이 이전등기되지 않은 점에서 이 거래가 위장 매매라고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강씨가 ‘용인 땅’ 매매대금으로 준 19억원은 ‘무상대여금’이며 사실상 노 대통령을 위한 정치자금이라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안씨가 10억원을 강씨에게 준 단서를 포착했다. 안씨는 강씨에게 빌려준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검찰은 강씨가 준 19억원의 일부를 안씨가 보전해준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기명씨가 계약서상 이름만 빌려주고 자세한 내용을 몰라 입건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썬앤문 불법대선자금 ▼
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9일 서울 강남 R호텔 일식당에서 문병욱 썬앤문 그룹 회장과 이광재씨, 고교 후배인 K은행 간부 김모씨 등 3명과 함께 조찬 모임을 가졌다.
앞서 이씨는 문 회장에게 자금 지원을 요청했으며 썬앤문 그룹에서 지원 의사를 확인한 김씨는 이씨에게 노 대통령의 참석을 권유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 모임이 끝난 뒤 당시 노무현 후보가 자리를 뜨자 문 회장은 이씨에게 1000만원짜리 수표 10장이 든 봉투를 전달했다. 이 돈은 대선이 끝난 지난해 12월 27일 현금으로 바뀌었으며 조찬 비용은 노 후보 수행팀장인 여택수 대통령제1부속실행정관이 지불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이와 함께 문 회장과 김성래 전 썬앤문 그룹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7일 경남 김해 관광호텔에서 여택수씨에게 쇼핑백에 담긴 현금 3000만원을 건넸다고 밝혔다. 당시 노 대통령은 문 회장 일행을 만나 인사를 나누던 중이었으며 옆 자리에 있던 여씨가 현금을 전달받았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여씨는 이 돈을 민주당 중앙당에 전달했다고 주장했으나 영수증 처리되지 않았다.
이에 앞서 김 전 부회장은 12월 6일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열린 민주당 부산시지부 후원회에서 신상우(辛相佑) 전 국회부의장에게 현금 2000만원을 건넨 것으로 밝혀졌다.
▼썬앤문 감세 청탁 ▼
검찰은 노 대통령이 썬앤문그룹 감세청탁에 개입했는지에 대해서는 관련자의 진술이 엇갈려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관련됐다는 김성래 전 썬앤문그룹 부회장의 진술은 있었지만 최종 판단을 내리기에는 미흡하다는 것.
다만 썬앤문그룹 세금을 23억원으로 줄여준 국세청 홍모 과장(구속)의 보고서에 ‘노’라는 글자가 적혀 있어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김 전 부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지난해 6월 박종일 세무사(구속)로부터 ‘노무현 후보가 국세청장에게 전화해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듣고 문 회장에게 전달했다”며 “문 회장에게서도 ‘노 후보가 국세청장에게 전화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박 세무사는 “김 전 부회장에게 노 후보의 청탁 전화를 요청한 적이 없고 다만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 전화해 주면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얘기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문 회장은 이와 관련해 “김 전 부회장의 제의를 받고 안희정씨에게 그런 취지로 부탁한 것은 맞지만 그 뒤 안씨가 청탁전화를 했다는 말을 듣거나 확인한 바는 없다”고 말했다.
안씨는 또 “당시에는 민원인 청탁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부탁이 있었더라도 내 선에서 묵살했을 것”이라고 부인했다.
관련자들의 진술은 엇갈리지만 수사의 불똥이 노 대통령에게 옮겨 붙을 가능성은 남아 있다. 검찰은 특검 수사가 본격화될 때까지 이 부분을 계속 조사할 계획이다.
국세청 홍 과장은 썬앤문그룹 세무조사 후 작성한 보고서에서 추징세액 부과액을 71억원부터 171억원까지 네 가지로 분류했는데 1안인 171억원 밑에다 ‘노’라고 써놓고 동그라미를 그려놓았다.
검찰은 홍 과장을 상대로 노 대통령 관련 여부를 추궁했으나 홍 과장은 “영어의 ‘노(NO)’를 의미한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현 단계에서 ‘노’라는 글자는 노 대통령을 지칭하는지 단정할 수 없지만 파문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