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자”“이젠 어디로 가나.” 30일 홍익중과의 연습경기를 끝으로 용인 KCC 연수원을 떠나야 하는 현대 여자농구단 선수들. 용인=권주훈기자
“파이팅”이라고 외쳐는 봤지만 다들 힘이 빠진 듯했다. 코트를 달리는 그들의 어깨는 무겁게만 보였다.
올해를 하루 남긴 30일 경기 용인시 KCC 연수원 체육관. 홍익중과의 연습경기를 위해 코트에 나선 현대 여자농구단 선수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겨울리그 개막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아 그 어느 때보다 훈련에 집중해야 했지만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전날 KCC가 31일까지 체육관과 숙소를 비워달라고 최종 통보했기 때문.
이영주 감독 대행은 이날 미팅을 갖고 “기죽지 말자. 어려울수록 더 열심히 하자”고 달랬지만 선수들의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몇몇 선수들은 서러운 마음에 눈시울을 붉혔다. 따뜻해야 될 연말에 오히려 ‘거리로 내몰리는 게 아닌가’하는 걱정이 앞섰다.
96년 입단한 진미정은 “팬들이 안부를 묻는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내 알았다”면서 “회사가 잘해 줄 것으로 믿지만 당황스럽다”고 털어놓았다. 지난달 삼성생명에서 현대로 옮긴 박선영은 “현대에서 계속 뛰면서 아픔을 자주 겪었던 언니들이 더 상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표팀에 뽑혀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고 있는 전주원 김영옥 강지숙도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현대 선수들은 그동안 모기업의 재정난 속에서 시련을 반복해 왔다. 2001년에는 서울 종로구 청운동 체육관이 신세계에 매각되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다. 간신히 경기 성남시 분당에 아파트를 얻은 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스포츠센터 체육관으로 출근해 훈련을 한 지 9개월. 다행히 KCC의 도움으로 지난해 6월부터 남의 집이긴 해도 체육관과 숙소를 얻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 선수들은 또다시 둥지를 잃고 불투명한 앞날을 걱정해야 될 처지. 농구단측은 “체육관을 알아보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지방 학교라도 빌려 써야 할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했다.
이번 사태는 KCC와 농구단 모기업인 현대아산의 경영권 분쟁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 어른들 싸움에 애꿎은 선수들이 희생양이 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용인=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