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우울했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각박하다는 말이 모자랄 정도로 올 한 해도 세상살이는 고통스럽고 쓸쓸했다.
그러나 남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빛과 소금’은 어김없이 존재했다. 꽃보다 아름다운 이런 의인(義人)들이 있었기에 그래도 세상은 살 만했다.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金幸均·42)씨.
24년간의 철도공무원 생활 가운데 평범한 하루에 불과했던 7월 25일 아침, 김씨는 서울 영등포역에서 열차에 치일 뻔한 이름 모를 한 아이의 생명과 자신의 두 다리를 바꿨다. 그 후 그의 삶은 순간순간이 혹독한 고비였다. 7번의 수술과 끝없는 아픔 속에 보낸 5개월여의 병상 생활. 그러나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29일 오전 입원 중인 경기 부천시 순천향대 부속 부천병원에서 김씨는 “그 일로 참 많은 것을 얻었다”며 한 해를 돌아봤다.
“가족의 소중함, 이웃의 따뜻함을 깨달았죠. 앞으로 받은 만큼 베풀고 살 겁니다.”
24시간 병상을 지켜주고 있는 아내(39)와 어머니(73)의 깊은 사랑을 새삼 깨달았다. 어린 줄만 알았던 중학교 1학년 큰아들(13)과 초등학교 2학년 작은아들(9)이 아빠의 고난 속에서도 오히려 훌쩍 커버린 모습에 고마울 뿐이다.
수많은 이들의 격려, 특히 상태가 더 나쁜 환자들의 위로 등 이웃사랑은 따스했고 그는 여기서 희망을 찾았다. 김씨는 자신이 구한 이름 모를 아이와 그 아이의 부모에게 “처음 못 찾아오면 더욱 찾기 힘든 게 사람 마음”이라며 “찾아오지 않았다고 자책감을 느끼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는 잃은 것은 없다고 했다.
“살다 보면 다칠 수도, 아플 수도 있습니다. 약간의 장애야 누구나 있는 거고, 어느 가정이나 굴곡은 있는 거 아닌가요.”
김씨는 새해에는 예전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한두 차례 더 수술을 받겠지만, 늦어도 새해 여름까지는 가정과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