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첫날 아침에 우리는
희망과 배반에 대해 말했습니다
설레임에 대해서만 말해야 하는데
두려움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산맥을 딛고 오르는 뜨겁고 뭉클한
햇덩이 같은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지 않고
울음처럼 질펀하게 땅을 적시는
산동네에 내리는 눈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오래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느티나무에 쌓이는
아침 까치소리 들었지만
골목길 둔탁하게 밟고 지나가는
불안한 소리에 대해서도
똑같이 귀기울여야 했습니다
새해 첫날 아침
우리는 잠시 많은 것을 덮어두고
푸근하고 편안한 말씀만을
나누어야 하는데
아직은 걱정스런 말들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올해도 새해 첫날 아침
절망과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시집 '당신은 누구십니까'(창작과비평사)중에서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뽀드득 뽀드득 눈길 지나 봄길 걸으며, 풀 내음 맡고 단풍비 내리도록 달 같은 임, 해 같은 벗들 만나십시오.
동으로 가나 서로 가나 남의 눈에 꽃으로 보이고 잎으로 보이며, 무병 무탈하고 운수 대통하십시오.
뒤돌아보면 양지의 볕보다 음지의 냉기 사무치고, 걸어갈 꽃길보다 진흙 수렁 걱정되지만 오늘은 ‘많은 것 덮어두고’ 덕담만 나누십시오. 전쟁, 테러, 지진, 태풍, 사스, 광우병, 조류독감…. ‘모오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담을 나누십시오.
오랜 언어 마을의 추장이 말씀하시길 새해 덕담엔 영적인 힘(言靈)이 실려 있답니다.
미웁고 데면데면한 사이라도 덕담 건네다 보면 묵은 앙금쯤은 눈 녹듯 사라지지 않습니까? 사람을 가장 다치게 하는 게 사람이라면 덕담 삼백육십오 일은 어떻습니까?
일년 내내 배반과 두려움 대신 까치소리를 품고, 비난과 원망 대신 덕담 품으면 사람으로 인해 사람이야 다치겠습니까?
날이야 흐리고 비바람 치겠지만 믿음이야 끊어지겠습니까? 믿음이 명약이 되어 세상 비바람도 개이지 않겠습니까?
반칠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