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에게 새해는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거취 문제까지 거론되기에 이른 대통령측근비리 검찰수사로 새해 대통령 주변 상황은 더 악화될 것 같다. 측근비리사건 외에도 국정안팎으로 꼬인 일들이 많다. 역대로 취임 첫해에 세 번씩이나 대통령직에 대한 회의감을 표시했던 대통령이 없듯이 취임 1년을 노 대통령처럼 보낸 사람도 없다. 이제 대통령은 건곤일척의 심정으로 4월 총선에서 국회 의석 확보에 모든 것을 걸려고 하겠지만, 총선이 만병통치약이라고 보지 않는다. 총선을 겨냥해 무리수(手)를 두다가는 오히려 부작용만 커진다.
▼신뢰상실이 문제의 본질 ▼
새해로 넘어온 많은 난제의 본질적 이유는 신뢰에 있다. 측근비리사건으로 인한 도덕적 치명상 말고도 대통령은 신뢰를 너무 잃었다. 모처럼 지지자들의 환호에 둘러싸인 감동 속에서 ‘시민혁명’을 부르짖기도 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일본 도쿄대가 조사한 한국민의 한국정부에 대한 신뢰율은 21%였다. 대통령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나라 모양도 너무 초라해지고 말았다. 국정운영이 힘든 가장 큰 이유는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2만달러 시대’ ‘동북아 중심’에다 정부가 내놓은 로드맵이란 것이 어디 하나 둘인가. 그런데도 시큰둥한 국민의 반응 속엔 ‘무슨 소리를 해도 못 믿겠다’는 저류가 깔려 있는 줄은 아는가. 신뢰구축이 부실한 상황에서 설령 목표의석을 얻는다한들 꼬인 난제가 저절로 풀리겠는가. 자칫 보복심리에서 권위주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된다.
어두운 새해 전망은 지난해 사회 전반에 걸쳐 이미 징조가 나타났다. 대통령의 신뢰상실 때문이다. 국민적 통합을 표방하면서 들어선 참여정부 1년은 통합과는 정반대로, 코드방향으로만 갔고, 지지자들까지 실망시켰다. 그리고 신뢰를 잃었다. 게다가 권위주의를 무너뜨리겠다는 대통령이 정작 보여준 것은 파격적 언동이다. 경박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개인적 성정 탓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대통령 대우를 해 준 적이 있느냐’고 했지만 그것이 요구한다고 될 일인가. 대통령의 언동을 보면서 국민은 어떤 판단을 했겠는가. 그것을 일찍이 알아 차렸어야 했다. 결국 비슷한 언동을 되풀이하면서 스스로 대통령의 권위를 무너뜨렸다. 믿음을 잃기 시작한 것도 여기서부터다. 리더십도 함께 흔들렸다. 여기에 불법 대선자금으로 드러난 대기업의 추한 모습은 사회지도층 전반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국사회의 리더십이 이처럼 처절하게 무너진 적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회 각 분야는 저마다 저항의 맛과 멋에 물들어 갔다. 그 결과가 사회기강의 붕괴로 나타난 것 아닌가. 그 사이 우리 사회의 격(格)도 떨어지고 말았다. 천박해졌다고 하는 사람까지 있다.
대통령은 ‘그들은 승복하지 않고 계속 흔들기만 했다’고 할 것이 아니라 국정 난조의 이유를 자신의 신뢰상실에서 찾아야 했다. 대통령코드에 맞추라고만 한다면 그것이 바로 ‘제왕적 통치’아닌가. 위태롭게만 느껴지는 대통령의 외교노선에 어떻게 찬동만 하라는 것인가. 무기력한 경제정책에 입을 다물고만 있어야 하는가. 경찰이 시위대에 얻어맞아도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여러 말 할 것 없다. 현정부 1년의 점수는 ‘청년실업 7%’가 말해준다.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방황한다면 여러모로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중국은 21세기 세계 일류대학을 만든다는 ‘211공정’으로 청년들의 성취욕을 북돋고 있다지 않은가.
▼불신, 두려워해야 ▼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하는 사회에서 대통령의 리더십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신뢰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믿지 않는 것만큼 가혹한 벌도 없다.
믿음을 얻지 못하면 대통령에게 새해는 대단히 엄혹할 것이다. 재신임론이나 불법 대선자금 ‘10분의 1’ 하야론으로 포장됐던 대통령의 거취는 이제 시한폭탄이 됐다. 이 판국에서 총선은 탈출구가 아니다. 오히려 폭발을 앞당기는 뇌관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신뢰다. 한 가닥 신뢰라도 잃는 것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