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
2002년 12월 나는 ‘노무현 후보’를 ‘노무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부모님을 설득했었다. 아버지는 필자의 노력에 감복해 노 후보에게 기꺼이 한 표를 던진 반면 어머니는 보수주의자로서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다른 후보를 찍었다.
그로부터 1년, 어머니는 뉴스를 볼 때마다 끊임없이 무언가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어쩌다 세상이 이 모양이 됐는지 하며 한탄하는 것이었다.
노 후보를 찍은 아버지와 나, 그리고 남편의 심정도 편치는 않다. 뉴스를 보며 실소할 때가 많다. ‘개그콘서트’를 보는 심정으로 뉴스, 아니 세상을 보기도 한다.
2003년 우리는 새 희망으로 새 대통령을 맞았지만 나라는 전혀 새로워지지 않았다. 정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고 서민 경제는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가족과 함께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이 잇따르는 등 충격적인 사건이 많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다른 나라로 탈출하자’는 이민열풍이 불기도 했다.
필자도 30대 아줌마의 한 사람으로 이민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 나름대로 이민설명회도 다녀보고, 이민 절차나 자격요건도 챙겨보면서 ‘어느 나라가 나와 어울릴까’ 고민한 적도 있다. 그때 필자의 어머니는 “지금 이런 상황을 만든 대통령을 뽑은 사람이 바로 너 아니냐. 대통령 임기 끝날 때까지 아무 데도 못 간다”며 눈을 흘겼다.
결혼 4년차인 필자는 그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정신적으로도 여유를 찾을 수 없었다. 누군가 내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일확천금’이라고 대답했을 정도였다. 비록 힘겹게 보낸 한 해였지만 이제는 툭툭 털어버리려고 한다. 갑신년은 좋은 일로 가득한 한 해가 되길 기원해본다.
이성희 주부·경기 안양시 안양2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