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프로야구 선수협의회에서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는 56홈런을 날린 이승엽(지바 롯데 마린스)이 아니라 심정수(29·현대·사진)였다.
2003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역대 최다득표를 한 선수도 이승엽(281표)이 아니라 심정수(307표). 이처럼 정규시즌에선 홈런 열풍을 몰고 온 이승엽이 빛났지만 시즌 뒤엔 심정수가 더 주목을 받았다.
심정수가 훌륭한 야구선수로 인정받는 것은 그가 그라운드 안에서나 밖에서나 항상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 그만큼 야구를 대하는 모습이 진지한 선수는 없다.
운동장 밖에서도 성실한 모습은 여전하다. 팬들은 근육질의 ‘헤라클레스’, 계란을 많이 먹는 ‘달걀귀신’ 정도로만 기억하지만 심정수는 가정적인 두 아이의 아빠이며 독학으로 영어회화를 깨우친 노력파다.
지난 연말엔 초등학교 은사가 재직 중인 분당 서당초등학교와 자신의 모교인 서울 수유초등학교를 찾아 후배들을 가르치며 야구용품까지 기증하는 따뜻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심정수에게 2004시즌은 더없이 중요한 한 해. 지난해엔 타율 0.335(2위) 53홈런(2위) 142타점(2위)에다 출루율(0.478)과 장타력(0.720) 1위를 휩쓸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올 시즌이 끝나면 FA(자유계약선수). 그래서 올해 성적은 더 중요하다.
이승엽과 함께 미국 에이전트 SFX사 소속인 심정수는 미국 진출을 원하고 있다. 그는 “승엽이가 미국 진출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보면서 많은 걸 배웠다.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게 치밀하게 준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심정수는 포지션이 여유가 있는 외야수인데다 체형(1m82, 100kg)과 타격 스타일이 미국선수에 가까워 한결 유리할 거라는 평. 현대 김용달 타격코치와 이승엽의 ‘사부’인 삼성 박흥식 타격코치는 타격에 기복이 적고 배팅 파워가 더 뛰어나다는 점을 들어 “메이저리그에 갈 경우 심정수의 성공 가능성이 더 높다”고 점친다.
이승엽이 일본으로 진출하는 바람에 올해 프로야구는 심정수의 독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2인자의 설움을 톡톡히 겪었기에 이승엽의 56홈런 기록 경신에 도전할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지금 심정수는 기량이 절정에 달해 있다는 점이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