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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전덕빈/담뱃값 인상과 소비량 예측

입력 | 2004-01-02 18:31:00


공상과학소설의 고전인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에서 주인공 해리 셀던은 수학의 연립방정식과 역사심리학을 활용해 수백년 뒤 인류와 우주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예측을 과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빈번히 빗나가는 예측의 결과 때문이기도 하고, 예측을 기껏해야 감(感)이나 경험에 의존하는 비과학적 행위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측이 과학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파운데이션’은 바이블이요, 셀던은 그 선지자다. 그렇다면 현실세계에서 과학적 예측이란 어떤 것일까. 올해 담뱃값을 일괄적으로 500원씩 올리는 법안이 정부 내부에서 옥신각신 중이다. 만일 기존의 정부안대로 500원을 인상했을 때 애연가들의 소비행태는 어떻게 바뀔까. 이를 셀던처럼 수학 방정식을 통해 살펴보자.

수학과 통계학의 방정식을 이용한 예측은 과거의 가격 인상과 이에 따른 담배판매량의 변화 사이에 존재하는 규칙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미래에 일어날 판매량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다섯 차례 담뱃값 인상이 있었다. 이때마다 사람들이 나름대로 담배를 피우는 양을 조절해 온 결과가 과거 담배판매 실적치다. 우선 이 판매실적의 시계열에서 장기추세와 단기변동을 통계적으로 정확히 분리해야 한다.

담뱃값이 인상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흡연자들은 일시적으로 사재기를 하고, 일단 사두었으면 인상 후 당분간 구매하지 않는다. 또 연초에는 많은 흡연자들이 금연을 결심하며 이에 따라 담배판매가 1월과 2월에 일시적으로 감소하지만 3월 이후에는 다시 예전 수준을 회복한다. 이와 같은 판매량 변화는 시계열의 단기변동이다.

담배판매 실적치에서 이런 단기변동을 제거하면 담배판매량의 장기추세가 드러난다. 장기추세에 영향을 주는 가장 큰 요인은 담배의 실질가격이다. 여러 차례 가격 인상을 거치며 담배의 실질가격은 상승해 왔다. 그뿐 아니라 담배의 유해성에 대한 인식 확대, 건강에 대한 관심 증대, 입법을 통한 금연구역 확대 등으로 국민 1인당 담배소비량은 장기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이는 시계열의 장기추세로 나타난다.

실질가격의 인상률은 가격 인상의 폭과 소득 수준의 변화를 고려해 계산해야 한다. 실질가격 외에 장기추세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인들도 정보를 수집해 정량화한다. 이를 과거의 장기추세와 요인들간의 관계식에 대입해 가격 인상 이후 장기추세를 예측한다.

마지막으로 예측된 장기추세에 단기 변동의 예측치를 더하면 최종적인 판매량 예측치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수학적 통계학적 방법으로 예측하면 올해 담배가격이 500원 인상되면 우리나라 성인인구 1인당 한 달 담배소비량은 현재의 10갑 수준에서 1∼3갑 줄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셀던은 자신의 예측을 통해 인류가 결국은 멸망할 것임을 미리 안 뒤 그 원인을 분석해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인류의 미래를 다시 밝게 한다. 셀던처럼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담배 수요의 원인과 결과를 연계할 수 있는 예측모형이 구축된다면 그 원인 중 조절 가능한 정책변수를 움직여 담배 수요도 조절할 수 있다.

과학적 예측이 과학적 정책결정을 낳는 법이다.

전덕빈 KAIST 예측연구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