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2004년을 맞아 첫 번째로 한 일이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라는 사실은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전통의상 차림을 한 일본 총리가 새해 벽두부터 태평양전쟁 때의 A급 전범 위패 앞에 고개를 숙인 일에 대해 한국과 중국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 내의 양식 있는 인사들도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 세력의 결집과 지지를 얻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2월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계기로 내친 김에 평화헌법 개정까지 이루겠다는 의지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국내용’ 계산은 결과적으로 일본의 대외적 입지를 좁힐 것이라는 점에서 근시안적이다.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은커녕 걸핏하면 주변국을 자극하는 일본을 동북아, 나아가 세계의 선도국가로 인정해 줄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 일본이 가야 할 길을 왜곡 오도하는 고이즈미 총리의 그릇된 처신은 국제사회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우선 올 초 열릴 것으로 기대되던 차기 6자회담이 악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중일간의 대북(對北) 공조가 이번 일로 크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과 나머지 5개국간의 중재자 역할을 해 온 중국이 어떻게 대응할지가 주목된다. 북한 핵무기와 미사일에 위협을 느낀다는 일본이 스스로 분란을 일으켜 위기 해소를 늦추는 격이 아닌가.
취임 후 4번째인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는 이제 주변국의 항의성명 정도로는 중단시킬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중국이 2002년 신사참배를 계기로 고이즈미 총리의 자국 방문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 정부도 행동으로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