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좌우와 앞뒤로 한 칸씩 띄워 자리를 배치한 한 대학입시장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大學聯合考試는 公正했는가? ‘컨닝’ 競演대회의 印象▼
말썽 많은 대학입학연합고시를 위요하고 각 지방에서 외치는 ‘수험자들의 소리’는 본보 조류를 통하여 속속 쇄도하여 오고 있거니와 十일 현재까지 들어온 투고 중 대표적인 것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전남·광주 고시=커다란 기대와 희망을 품고 우리의 장래를 결정할 연합고시장의 삼엄한 분위기를 생각하면서 조리는 마음으로 입장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과는 백팔십도로 다른 고시장의 분위기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국가고시라고 생각하기보담 컨닝 경연대회라고 하는 게 타당한 느낌이었다.
△충북·청주 고시=소위 시험지는 인쇄가 선명치 못하여 식별하기에 극히 곤난했고, 뿐만 아니라 전혀 보이지 않은 글자와 오식이 많아서 우리들 자신이 재차 정정 기입하였는데, 이것을 기화로 옆사람과 말해서는 안 될 말까지 속사기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중대한 문제일 것이다. 더욱이 감독관의 위엄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이 글짜 그대로 허수아비가 되고 장내의 공기인즉 ‘컨닝’이 성행하여 목불인견이었고, 수험번호 검사가 철저하지 못하여 그 자가 참 응시자인가조차도 구별 못할 지경이었다.
▼수없이 바뀐 입시제도…논란 언제 끝나려나 ▼
1954학년도 대학입시를 위해 53년 12월 28, 29일 양일간 전국에서 첫 대학입학연합고시가 실시됐다. 이는 대학별 입시에 따른 과열을 방지하고 최소한의 대학 수학능력을 갖춘 인재를 일차 선별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일종의 자격고사였다. 당시 전국 대학 입학정원의 140%를 선발한 뒤 합격자에 한해 대학별 본고사를 치를 자격을 부여했다.
그러나 기사에서 보듯, 이 시험은 실패로 끝났다. 당시 동아일보의 독자투고란인 ‘조류(潮流)’에는 시험 부정행위를 고발하는 제보가 줄을 이었다.
문교부도 잘못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듬해 대학입학 시험은 이전처럼 대학별 독자시험 체제로 돌아갔다. 그 뒤 대입제도는 62학년도 입시 때 대학입학자격 국가고사, 64학년도에 대학별 독자 시험, 69학년도 대입예비고사, 82학년도 대입학력고사, 94학년도 대입수학능력시험 등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바뀌어 왔다.
그러면서 대학입시를 치를 때마다 ‘난이도에 문제가 있었다’는 등의 논란도 그치지 않았다. 2004학년도 대입 수능시험에서는 사상 최초로 복수정답을 인정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대학입시가 바로 설 날은 언제일까.
윤승모기자 ys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