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메이저리그 판타지 게임의 선수별 순위가 발표된다.
수백 개 업체가 난립하고 있는 가운데 스포츠전문 잡지인 ‘스포팅뉴스’가 최근 발간한 ‘2004시즌 베이스볼 레지스터’를 소개하면, 김병현은 연봉 359만달러의 가치를 지닌 선수로 인정받아 전체 549명의 투수 중 48위, 서재응은 62만달러로 89위에 올랐다. 반면 박찬호는 50만달러짜리 선수로 분류돼 최하위권인 513위로 평가절하 됐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김병현의 지난해 연봉은 325만달러였는데 올해 벌써 재계약을 했나. 박찬호는 앞으로도 3년간 연 평균 1300만달러가 보장된 귀하신 몸인데 고작 50만달러라니….
웬만한 야구팬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국내엔 판타지 게임이 아직 널리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판타지 게임은 79년 다니엘 오크렌트라는 뉴요커가 ‘내가 구단주라면 훨씬 효율적인 팀을 구성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한 데서 탄생했다. 10명의 동지를 규합한 그는 각자 250달러의 예산 내에서 선수를 경매로 드래프트해 가상의 팀을 구성한 뒤 선수의 실제 활약을 점수로 매겨 팀 순위를 결정하는 판타지 게임의 원형을 만들어냈다.
판타지 게임은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기자가 10년 전부터 즐겨온 ‘베이스볼 모글’같은 데는 선수의 가상 연봉은 기본이고 입장권과 핫도그 음료수 가격, 마이너리그 시스템 보유에 따른 예산 편성, 광고 매출과 의료비 지출까지, 실제로 구단주가 결정해야 할 대부분의 아이템이 모두 들어 있다. 입장권을 예로 들면 가격과 관중수는 반비례하기 때문에 최대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접점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가상 연봉에 대비해 실제 실력이 뛰어난 ‘흙 속의 진주’를 발굴하는 것. 이런 점에서 김병현은 이제 매력적인 선수는 못된다. 그는 2년 전만 해도 값싼 연봉 때문에 최고의 인기 상품이었지만 이젠 제대로 평가를 받았다. 반면 서재응은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할 때 여전히 저평가돼 있는 경우.
무조건 연봉이 높다고 게임 참가자들의 외면을 받는 것은 아니다. 알버트 푸홀스나 에릭 가니에 같은 선수는 다들 못 잡아서 난리다. 천문학적 연봉을 받지만 밥값 이상의 활약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김병현이 현재의 평가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 정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찬호로서도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만큼 명예회복을 할 일만 남았다.
야구 공부도 되고 보는 재미도 두 배가 되는 판타지 게임. 독자들께도 감히 권해 본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