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안 기자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으로 보는가.”
기자는 워싱턴에서 백악관과 행정부 당국자들을 만날 때마다 이 질문을 빼놓지 않고 던졌다. 그러나 당국자들은 직접적인 대답을 회피했다.
북한의 진정한 의도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을 알아보는 방법이 6자회담이고, 현재로서는 그 길밖에 없다고도 했다.
워싱턴의 한반도전문가들은 행정부의 이런 태도가 불만인 듯했다. 북핵 문제를 진정 해결하려는 ‘절박함’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 한 걸음 더 나아가 “도대체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일관된 북핵 정책이 있기는 한 것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말만 있을 뿐이다?=“북한의 핵 개발을 중단시키고 해결하려는 절박함을 찾아볼 수 없다.” 지난해 12월 5일 만난 모턴 아브라모위츠 센트리재단 소장 겸 수석연구원은 이렇게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미 행정부가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해서 진중한 태도로 협상에 임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면서 “협상의 진전을 위한 ‘진정한 제안(serious proposals)’은 협상 테이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2차 6자회담이 결국 열리지 못한 것도 회담 진전을 위해 필요한 ‘진정한 제안’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런데도 미 행정부는 6자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국제관계대학원장은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했고 핵 사찰 요원들까지 추방했다. 이것이 ‘성공’이라면 무엇이 실패란 말인가”라고 공박했다.
워싱턴 일각에서는 북한과 미국 모두 6자회담에서 ‘협상 시늉’만 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11월 미국 대선까지는 국제사회와 민주당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회담에 임하는 자세만을 보여주는 것이 부시 공화당 행정부의 전략이자 대북정책이라는 것이다.
미 행정부 당국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북한이 핵을 진정 포기할 것으로 보는가, 아니면 국제사회에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자회담에 임하는 것인가.”
백그라운드 브리핑(배경 설명)을 조건으로 만난 행정부 당국자는 반은 농담조로 “‘연극을 하고 있나(Are we pretending?)’라고 묻는 것인가”라고 되물은 뒤 “둘 다(both)”라고 대답했다.
아브라모위츠 소장도 “6자회담은 미국이 (협상 결렬을 선언하기 전에) 중국과 한국에 ‘북한과 대화했다’는 점을 보이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자주 바뀌는 ‘대본’=미 행정부 내 분열로 대북정책의 기조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도 많았다.
갈루치 원장은 “부시 행정부 내 대북정책 분열상은 심각하고 근원적”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빌 클린턴 전 행정부의 ‘페리 방식(Perry Process)’을 고수하려 하는 반면 국방부, 부통령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대통령을 포함한 백악관은 관련국들과 함께 고립과 압력을 통해 북한의 개혁을 유도하거나 북한의 현 정권이 붕괴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바로 이 같은 근본적인 분열이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작성된 윌리엄 페리 대북특사의 ‘페리 방식’은 대북 포용정책을 기본으로 하되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중도전략이다.
예를 들어 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하자고 대통령이 결정해도 대화와 협상의 범위, 협상 시한 등 세부적인 사안을 놓고 또 다른 논쟁과 분열이 시작된다고 한다.
앨런 롬버그 스팀슨연구소 연구원은 “부시 행정부의 문제는 대통령이 나서서 방향을 잡아줘도 (강온파들이) 그 의미를 축소시키고 자신들의 방향대로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브라모위츠 소장도 “예컨대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를 하자’고 결정을 내려도 행정부 내 분열로 인해 그 결정이 즉각 실행에 옮겨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 성향의 워싱턴 포스트도 지난해 12월 8일자에서 “미국의 대북정책 대본이 자주 바뀌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파월 장관의 입지도 불투명하다=북핵 정책을 둘러싼 행정부 내 분열과 갈등 속에서도 현재까지는 파월 국무장관이 주장해 온 ‘외교적 노력’이 미국의 공식 입장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전기를 마련한 것도 파월 장관이었다. 지난해 7월 부시 대통령이 아프리카를 순방할 때였다. 파월 장관은 부시 대통령을 수행하면서 대통령 및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과 함께 장시간 북핵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눴으며, 그 후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결로 정책기조가 선회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후 파월 장관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켜 주었고 결국 지난해 8월 말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1차 6자회담이 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도 지난해 12월 7일 이런 보도를 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한반도전문가들 중 상당수는 행정부 내의 계속되는 분열로 인해 과연 파월 장관의 ‘강화된 입지’가 지속될 수 있느냐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냈다.
대표적 강경파로 ‘국무부 내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라인’으로 꼽히는 존 볼턴 차관 등으로 인해 국무부 안에서도 분열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데다 딕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강경파들의 입김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행정부 당국자는 “북핵 문제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파월 국무장관이 대통령과 직접 대화하는 기회도 늘어났다”면서도 “그러나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의 최측근은 역시 라이스 보좌관과 체니 부통령”이라고 덧붙였다.
롬버그 연구원 역시 “파월 장관이 부시 대통령에게서 북핵문제 해법에 대한 ‘권한(mandate)’을 부여받았다고는 하나 앞으로의 기조에 대해서는 확신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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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북정책은 마비 상태에 가깝다(close to paralysis).”
‘네오콘(신보수주의)의 요새’로 불리는 미 기업연구소(AEI). 워싱턴 북서쪽 17가(街)에 있는 AEI 사무실에서 만난 닉 에버스타트 선임 연구원은 ‘마비상태’ ‘블랙홀’ 등과 같은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며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강력히 비난했다. 의외였다.
그는 “약속을 위반한 채 핵을 개발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 누구도 응징(penalty)을 얘기하지 않는다”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북한에 다른 정권이 들어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이는 완전한 환상(complete fantasy)”이라고도 했다.
―‘악의 축’ 발언에서 6자회담까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진정한 변화가 있었는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아무리 입력(input)해도 결과물(output)이 전혀 나오지 않는 블랙홀과 같다. 북한에 대한 중유 공급 중단, 대량살상무기 확산저지구상(PSI) 발표, 북한을 비난한 몇 개의 연설 외에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접근법은 계획적이지도 않고 대증요법적(reactive)이다.”
―미국의 대북정책을 ‘마비상태’라고 얘기했는데….
“미 행정부는 2002년 한국 대선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선거로 등장한 새로운 인물들에 대해 미국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 행정부 내 분열도 문제다. 북한정권 붕괴를 추구할 것이냐, 포용정책을 고수할 것이냐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상당한 기류변화는 있었다. 현 행정부의 온건파들이라도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강경파들보다 훨씬 더 강경하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강온간의) 분열은 해결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얘긴가.
“북한 정권이 바뀌어야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나은 ‘독재자’가 들어서기까지는 상황이 악화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이렇게 가야 할 것인지는 어려운 문제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3년간 한미관계가 악화됐다는 점도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워싱턴=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네오콘 요새' A티가 보는 부시 대북정책 ▼
닉 에버스타트 연구원
“미국의 대북정책은 마비 상태에 가깝다(close to paralysis).”
‘네오콘(신보수주의)의 요새’로 불리는 미 기업연구소(AEI). 워싱턴 북서쪽 17가(街)에 있는 AEI 사무실에서 만난 닉 에버스타트 선임 연구원은 ‘마비상태’ ‘블랙홀’ 등과 같은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며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강력히 비난했다. 의외였다.
그는 “약속을 위반한 채 핵을 개발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 누구도 응징(penalty)을 얘기하지 않는다”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북한에 다른 정권이 들어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이는 완전한 환상(complete fantasy)”이라고도 했다.
―‘악의 축’ 발언에서 6자회담까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진정한 변화가 있었는가.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아무리 입력(input)해도 결과물(output)이 전혀 나오지 않는 블랙홀과 같다. 북한에 대한 중유 공급 중단, 대량살상무기 확산저지구상(PSI) 발표, 북한을 비난한 몇 개의 연설 외에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접근법은 계획적이지도 않고 대증요법적(reactive)이다.”
―미국의 대북정책을 ‘마비상태’라고 얘기했는데….
“미 행정부는 2002년 한국 대선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선거로 등장한 새로운 인물들에 대해 미국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 행정부 내 분열도 문제다. 북한정권 붕괴를 추구할 것이냐, 포용정책을 고수할 것이냐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상당한 기류변화는 있었다. 현 행정부의 온건파들이라도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강경파들보다 훨씬 더 강경하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강온간의) 분열은 해결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얘긴가.
“북한 정권이 바뀌어야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나은 ‘독재자’가 들어서기까지는 상황이 악화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이렇게 가야 할 것인지는 어려운 문제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3년간 한미관계가 악화됐다는 점도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워싱턴=김정안기자 cre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