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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피터팬'…"피터팬은 사랑을 몰라"

입력 | 2004-01-06 18:05:00

사진제공 무비앤아이


‘뮤리엘의 웨딩’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을 연출한 P J 호건 감독의 ‘피터팬’은 종래의 피터팬 영화와는 다르다. ‘피터팬 신드롬(어른 사회에 적응 못하고 아이 상태에 머무르는 심리 증후군)’의 견고하고 오래된 껍질을 스스로 깨부수고 나온 영화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지금껏 디즈니 만화로 잘 알려진 어린이용 ‘피터팬’과 달리, 성장의 고통을 겪는 소녀 웬디의 성적(性的) 팬터지와 방황을 이야기의 추진엔진으로 삼고 있다.

피터팬을 따라 네버랜드로 간 웬디는 피터에게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어른이 되기 싫은’ 피터는 이성 간의 사랑이 뭔지 모른다. 웬디는 피터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후크 선장에게 납치당하지만, 쳄발로를 두드리며 외로움을 노래하는 후크의 묘한 매력에 사로잡힌다.

호건 감독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와 이들의 관계망 속에 섹슈얼 코드들을 내밀하게 심어놓았다. 이는 1902년 발표된 원작소설의 무게감을 충실하게 살려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피터의 기다란 발가락과 맨발, 종마 같은 종아리를 강조하는 것은 100년 넘게 중성에 가깝게 인식되던 피터팬의 캐릭터에 ‘남성으로서의 성징(性徵)’을 불어넣는다. 그럼에도 피터는 “난 어른이 되기 싫다”고 울부짖고, 그만큼 잔인하게 웬디의 성적 환상도 깨진다. 피터와 웬디 역에 10대 배우들을 캐스팅한 것도 성장 스토리에 무게중심을 두겠다는 감독의 의도가 드러나는 대목.

영화는 명도와 채도를 모두 낮춘 그로테스크한 화면에 웬디의 선홍빛 입술을 대비시킴으로써 키스를 갈망하는 웬디의 성장 의지를 한층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시계소리를 내는 악어와 후크선장의 앵무새, 인어들은 코믹성이 배제된 채 저주에 찬 야생동물처럼 묘사된다.‘스위밍 풀’에서 뇌쇄적인 ‘팜 파탈’ 연기를 보여준 사니에르는 ‘여자 냄새’ 물씬 풍기는 배우. 감독이 팅커벨을 해석하는 시각의 일단이 드러난다.

‘블랙호크다운’ ‘턱시도’에 출연했던 제이슨 아이작스가 웬디의 아버지인 소심한 은행원과 후크 선장이란 두 가지 역을 맡은 점도 곱씹어볼 만하다. 이는 동일한 인물이 웬디에겐 아버지로도, 남자로도 다가오는 이중성을 암시하는 것. 사춘기 소녀가 잠재의식 속에서 아버지에 대해 애착을 느끼는 ‘일렉트라 콤플렉스’가 비밀스럽게 묻어난다.

16일 개봉. 전체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