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 특히 행정부 당국자들에게 주한미군 문제를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한미 양국은 ‘미래동맹구상’이라는 이름으로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를 협의해 왔고 미 2사단의 한강 이남 재배치는 기정사실화돼 있긴 하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5일 특별성명을 통해 다시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를 공식선언하자 서울과 워싱턴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8월 15일 광복절 때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밝힌 ‘자주국방론’과 미적거리는 한국 정부의 이라크 파병 계획에 대한 ‘경고성’이라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미친 짓이다”=전 세계 미군배치 재조정(Transformation) 차원에서 이뤄지는 주한미군 재배치 자체를 문제 삼는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국제관계대학원장은 시점이 나쁘다며 “이는 정치적으로 ‘미친 짓’(insane)”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해외주둔 미군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는 올바른 일이지만 북핵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 미 행정부 내부에서조차 분열이 있는 시점에서 이런 일을 추진하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라고 덧붙였다.
제임스 프리스텁 국방대학 선임연구원은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는 주한미군 재배치의 ‘기본 동기’에 대해 한국 일각에서의 해석과는 다른 분석을 내놨다.
그는 “한국에서는 미국이 미군의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 ‘킬링필드(killing field)’가 될 2사단을 한강 이남으로 이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그는 “수많은 미국인이 서울과 근교에 살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그들이 바로 ‘인계철선(tripwire)’”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독단’도, 한국의 ‘모호성’도 문제다=데이비드 스타인버그 조지타운대 교수는 “미국이 주한 미 2사단의 한강 이남 이전 문제를 일방적으로 한국에 통보한 것은 독단적 조치였다”고 비난했다.
진보성향의 앨런 롬버그 스팀슨센터 연구원도 “미군 재배치는 군의 효율성 강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며 나 역시 10년 전부터 이를 지지해 왔다”고 밝히면서도 “그러나 한미간 공조 면에서 미국이 그런(독단적) 인상을 줬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가세했다.
그러면서도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노무현 정부의 ‘자주국방론’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프리스텁 연구원은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한반도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의 주둔은 매우 중요하다’고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전제한 뒤 “노 대통령이 이야기한 ‘자주국방’이 어떤 뜻인지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노 대통령의 말이 만일 한미 동맹을 깨겠다는 것이라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한국 정부는 그 뜻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주한미군 재배치와 한미 동맹은 별개다”=백악관 당국자는 “한미 군사동맹 역시 이제 국제적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재편은 10년 전부터 논의돼 온 문제일 뿐 아니라 국제적 위협에 더욱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전 세계적 미군 재편작업의 일환이지 한미 군사동맹을 약화시키는 조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하지만 민감한 시점임을 고려해 한 가지씩 차근차근 진행시킬 것”이라면서 “한미 군사동맹에 대한 미국의 공약(commitment)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행정부 당국자는 주한미군 감축을 기정사실화했다. 하지만 “병력 감축은 첨단 과학기술과 장비를 갖춘 군사력을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며 한미 군사동맹의 약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전시작전권 반환도 이뤄지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 행정부 당국자는 “실질적인 계획이나 시한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면서도 “어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은 한국과 밀접한 통합작전권(integrated command)을 갖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헤리티지재단의 발비나 황 연구원은 “부시 대통령이 재선되더라도 향후 3년 내 실질적인 감축은 예상하기 힘들고 설사 감축되더라도 매우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병력 감축이 한미 군사동맹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감축이 이뤄질 경우 북한이 오판할 여지가 있어 현 시점에서는 적절치 않다”면서 “부시 대통령이나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이 점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생각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시리즈를 마치며…김상영 국제부장▼
동아일보 신년기획 시리즈 ‘워싱턴의 한반도정책-무버 & 셰이커(Mover & Shaker)’가 5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당초 이 시리즈는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의 한반도정책 결정에 영향력이 큰 워싱턴 당국자들과 싱크탱크 연구원 및 교수들을 연쇄 인터뷰해 ‘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속 시원히 들어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악의 축’ 제거를 공언한 부시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큰 시점에 이는 한반도의 명운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본보는 지난해 10월부터 인터뷰 대상자를 선정하고 접촉한 뒤 12월 초 기자를 워싱턴에 파견했다. 인터뷰에 응한 15명 가운데 현재 백악관이나 국무부에서 한반도정책에 직접 간여하고 있는 3명에 대해서는 본인들의 요구에 따라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연쇄 인터뷰에서 들은 현장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특히 하드라이너(hardliner·강경파)로 분류되는 인사들은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심지어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인사들을 ‘탈레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미 동맹이 위기라는 주장에는 강온파가 따로 없었다.
본보는 시리즈 1회와 2회에 워싱턴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 3회에는 부시 행정부의 한반도정책을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드는가를 다룬 뒤 4회에 한반도정책을 둘러싼 미국 내부의 분열 양상을 다루기로 했다. 마지막 5회에는 우리측 북핵정책을 총괄하는 NSC의 이종석(李鍾奭) 사무차장과의 인터뷰를 전면으로 다루기로 했다.
본보는 지난해 12월 31일 NSC에 전화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어 1월 2일 오전 NSC 대변인이 인터뷰 요청서를 e메일로 보내달라고 요구해 그대로 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NSC는 인터뷰를 거절하면서 ‘법적 대응’을 거론했다. 다음날인 3일에는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본보 보도를 비난하고 다시 한 번 법적 조치를 운운했다. 시리즈가 겨우 2회 나갔을 때였다.
이제 시리즈는 끝났다. 동아일보는 NSC의 법적 조치를 기다릴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이 시리즈를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는지 지켜볼 생각이다.
NSC는 본보가 인터뷰한 미국측 인사들을 만나 사실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언론의 기본양심을 의심한 것이다. 영향력 있는 워싱턴 인사들이 하지도 않은 말을 신문에 게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NSC의 사고방식이 두려울 정도다.
전쟁 상대국과도 외교는 하는 법이다. 하물며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과 대화할 때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라도 만나서 토론하고 설득해야 한다.
본보 시리즈 4회에서 다뤘듯이 미국도 한반도정책을 놓고 강온파로 분열돼 혼란을 겪고 있다.
이런 판국에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상대만 만나려는 자세로 어떻게 우리 입장을 관철할 수 있단 말인가. 시리즈가 겨우 2회밖에 나가지 않은 시점에서 ‘법적 대응’ 운운하는 조급성으로 어떻게 장기적인 정책을 수립할 수 있겠는가. 이러니 ‘탈레반’이라는 말을 듣는 것 아닌가.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느낀 감정은 이런 사람들에게 국가 안보정책을 맡기고 있는 이 나라의 장래에 대한 걱정이었다.
부디 NSC는 본보가 인터뷰한 미국 인사들에게 일일이 확인해 공언한 대로 법적 조치를 취해주기 바란다. 아니라면 정식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 NSC는 동아일보와 시리즈를 기획한 기자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우리는 지켜볼 것이다.
김상영 국제부장 you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