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감독으로 주목받는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왼쪽 위)의 소피아 코폴라(왼쪽 아래)와 '웨일 라이더'의 니키 케이로 감독.
예전보다는 나아졌다 해도 아직 미국 주류 영화계에서 여성이 작품연출의 기회를 얻기란 매우 힘든 실정. 하지만 차츰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할리우드에서 여성 감독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실력파 여성감독들을 소개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발표된 여성 감독들의 작품 중 소피아 코폴라의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Lost in Translation)’, 패티 젠킨스의 첫 연출작 ‘몬스터(Monster)’, 니키 케이로의 ‘웨일 라이더(Whale Rider)’, 캐서린 하드윅의 ‘열세 살(Thirteen)’, 섀리 스프링거 버만의 ‘아메리칸 스플렌더(American Spelnder)’ 등이 영화계의 호평을 받았다는 것.
‘아메리칸 스플렌더’는 버만이 로버트 풀치니 감독과 공동 연출한 작품. 문서정리원에서 만화가로 변신해 유명해진 인물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4일 미국 영화비평가협회가 선정한 최우수영화에 선정된 바 있다. 뉴욕타임스는 버만이 흔히 데뷔작에서 볼 수 있는 현란한 카메라 워크 대신, 절제된 화면으로 수준 높은 영화를 만들었다고 평했다.
여성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다룬 ‘몬스터(Monster)’에서는 찰리즈 테론이 이 협회 선정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개가를 올렸다.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은 갓 결혼한 20대 여성과 중년 영화배우가 우연히 도쿄에서 만나 서로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 이 영화를 만든 소피아 코폴라는 ‘대부’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딸. 배우로도 활동했던 그는 신작에서 요즘 영화로선 보기 드물게 배우의 재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는 평을 들었다.
친구로 인해 마약과 범죄에 빠져드는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열세 살’과 뉴질랜드 마오리족 소녀가 체험하는 삶과 사랑을 그린 ‘웨일 라이더’ 등도 여성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밖에 셀마 헤이엑 주연 ‘프리다’의 줄리 테이머 감독, 잭 니콜슨과 다이안 키튼 주연 ‘섬씽스 가타 기브(Something's gotta give)’의 낸시 메이어스 감독도 실력파 여성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메이어스 감독은 여성들이 멜로 뿐 아니라 코미디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음을 입증했다.
오랫동안 여성 감독들은 할리우드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고 평가받을 기회가 없었다. 지금까지 아카데미 영화제 감독상 후보에 오른 여성감독은 1976년 미국에서 개봉된 이탈리아 영화 ‘7인의 미인들’의 리나 버트뮐러, 93년 선보인 ‘피아노’의 제인 캠피온 등 두 명에 불과했으나 수상에는 모두 실패했다.
앞으로 역량 있는 여성 감독들에게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할리우드 영화가 더욱 풍성해질 것이라는 것이 뉴욕타임스의 분석이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