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정년퇴임을 앞둔 은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이십대는 스물하나, 스물둘, 스물셋, 한 해 한 해의 기억이 제법 생생한데 삼십대를 넘어서니 서른, 서른다섯, 마흔이 되고, 그 뒤엔 훌쩍 쉰, 예순이 되더라는 회고였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의 흐름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어른들 말씀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요즈음이다.
지난 한 해도 분주하고 번잡하기만 한 시간 속을 헤쳐 온 덕분에 달력 한 장을 넘기면 왠지 새로운 하루가 펼쳐질 것만 같은 기대감에 젖어 보지만 이 기대감이 ‘재미있는 지옥(exciting hell)’이란 악명(?)의 도시 서울 생활에서 그리 오래 갈 건 아님은 물론일 게다.
▼'정치과잉'에 고단한 民生 ▼
우리네 삶이 지나치게 소모적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즈음, 귀에 솔깃한 이야기를 한 토막 들었다. 우리의 일상을 중요한 일과 다급한 일의 두 축을 중심으로 나누어보면 중요하고도 급한 일, 중요하지만 급하진 않은 일, 중요하진 않지만 급한 일, 그리고 중요하지도 급하지도 않은 일, 이렇게 네 범주가 만들어지는데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중요하지도, 그다지 급할 것도 없는 일 속에서 허덕인다는 것이다. 그 반면에 ‘성공한 사람들’은 중요하지만 급하진 않은 일에 많은 자원을 투자하더라는 것이다.
중요하지만 급하진 않은 일, 이 속엔 바로 자신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기, 정서를 순화시키기, 삶의 방향감각을 잃지 않기, 그리고 자신을 진정 쉬도록 해주기 등이 포함될 것이다.
한데 중요하지도, 그렇다고 급하지도 않은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붓는 건 비단 평범한 생활인들만의 어리석음은 아닌 듯싶다. 정치권 역시 새해를 여는 각오가 남달랐으련만 새해 벽두부터 총선 승리만을 목표로 이전투구(泥田鬪狗)를 거듭하고 있는 정치권의 행태를 바라보자니, 이미 넘긴 달력을 되돌리고만 싶어진다.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서 10년 가까이 주춤거리고 있는 국가로선 중요하지만 급하진 않은 일에 여유를 부려봄은 시기상조이리라. 그렇다면 진실로 중요하고도 급한 일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순리 아니겠는가. 문제는 정치권에서 판단하는 중요하고도 급한 일의 순서가 국민의 정서와 괴리를 일으키는 것은 물론 때론 국민의 눈높이조차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닌지….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는 고언을 인정한다 해도 국민이 일상 속에서 체감하는 중요하고도 급한 일들이 산적해 있는데 정치권에서 이를 읽어내지 못한다 함은 여간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경제를 살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대통령의 새해 일성을 아직 희망을 포기하기엔 이르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이련다.
그렇다면 대통령을 위시한 정치 지도자들 모두는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차라리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때가 그립다”는 자조적 푸념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야 한다. 20대 초반 인생의 황금기를 지나는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저주받은 세대’요 ‘사(死)학년’이라 칭하는 상황에도 현실적 돌파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고질적 부정부패, 대립일변도의 노사갈등, 불합리한 반(反)기업정서 등등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가 공허한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현실 또한 냉정히 직시해야 한다.
▼'삶의 질 희생' 강요 말길 ▼
벌써부터 우리네 술자리의 단골 안주론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인지, ‘총선 드라마 각본’이 올라와 있지만 술기운을 빌려서도 차마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은 무섭게 치솟는 사교육비 부담이요, 고실업사회에서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을 자신의 노후인지도 모를 일이다.
국민을 위해 중요하고도 급한 일이 정치권에 의해 방기되는 ‘정치과잉 사회’가 지속되는 한 우리는 ‘삶의 질 희생’이라는 과다한 비용을 치러야만 한다. 올 한해 너나없이 중요하고도 급한 일에 우리의 소중한 자원을 집결할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해본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