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
#1. 철없는 시절에 서울에 찾아왔을 때 인왕산에선 호랑이 울음소리, 창경원에는 벚꽃이 만발, 종로에는 일본 사람이 욱실욱실. 경복궁 내에서 길이 엇갈리어 해가 지도록 동료를 찾지 못해 울며 헤매던 종로 네거리. 배는 고프고 밤은 깊어 가는데 어찌할 바를 몰라 울고만 있었지.
정신을 가다듬고 결심을 내어 남의 집 문고리를 몇 번이나 잡았던가? 동정은 못 받고 욕설만 듣고 나니 용기를 잃어 망설이다가 파고다공원(탑골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쪼그리고 앉아 꿈나라로 가는데 구두 발길에 차여 깜짝 놀라 깨니 경찰이 눈을 부릅뜨고 서 있었다. 파출소로 끌려가 청소를 하고 나니 “빠가야로” 한마디 ‘귀쌈’ 하나 선물 받고 쫓겨나온 종로의 밤거리. 아, 잊지 못할 서울의 밤거리.
#2. 배움의 길을 찾아, 삶의 길을 찾아 해외로 방황하던 이 내 몸이 육십 성상 지난 후 다시 찾아온 서울. 고층건물과 지하철로 새로 단장한 이 거리,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며 공원마다 무궁화가 만발하니 잃었던 고국이 내 품에 안기는 듯.
종로에서 갈 길을 몰라 헤매다가 가는 사람 붙잡고 내 갈 길 물으니 천만뜻밖에 택시로 안내하고 점심까지 접대. 종묘에서 우연히 처음 만난 평양친구, 동포라고 동정하며 점심 주고 용돈 주어.
아, 산도 그 산, 강도 그 강, 거리도 그 거리. 달라진 것은 사람들의 정신면모.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하고 상냥해 곳곳에서 귀인을 만나 도움과 혜택. 비록 여동생 찾는 꿈은 깨어졌지만 고국 동포들의 따사로운 감정은 영원히 내 가슴 깊이 새겨 있으리. 번영하라 고국이여. 그대여 안녕.
김건 중국 랴오닝(遼寧)성 푸순(撫順)시
조선족 제1중학교 고급교사
※필자 김건씨(86)는 중국 동포로, 6·25전쟁 때 헤어진 여동생을 찾기 위해 지난해 말 방한했다가 돌아간 뒤 고국의 정을 되새기는 글을 본보에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