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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방형남칼럼]모시기와 짓밟기

입력 | 2004-01-07 18:09:00


자전거를 탈 때는 누구나 이율배반적 행동을 해야 한다. 핸들을 감싸 쥐고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조심 다루는 것이 첫걸음이다. 그래야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달린다. 반면 아래쪽 페달의 신세는 가련하다. 페달은 마구 짓밟아야 한다. 그래야 자전거가 쭉쭉 나간다.

모셔야 하는 핸들, 짓밟아야 하는 페달. 똑같이 자전거에 달린 부속이지만 사람들로부터 받는 대우는 딴판이다. 그래도 둘의 합작으로 자전거는 앞으로 굴러간다.

▼짓밟기 핸들인가 페달인가 ▼

인생 도처에, 관행적으로 독일어 라트파러(Radfahrer)로 불리는 자전거 타는 사람이 겪어야 하는 모순이 도사리고 있다. 모시기의 대상이 되는 이가 있고 짓밟기의 대상이 되는 이가 있다. 모셔야 할 상대를 짓밟고, 짓밟아야 할 상대를 모시는 가치착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대선자금 모금은 전형적인 모시기의 산물이다. 기껏해야 5년 집권할 권력이 무서워 뿌리 깊은 기업들이 법까지 어겨가며 돈을 갖다 바쳤다. 돈을 받은 대통령후보측은 당선되면 잘 모시겠다고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다가오는 총선, 또다시 모시기의 계절이 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행정수도 건설 등 모시기 공약까지 적절히 활용해 승자가 됐다. 그의 모시기 전략은 지금도 계속된다. 노사모가 주도한 ‘리멤버 1219’ 행사 참석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애정이 그의 모시기를 말해준다.

문제는 짓밟기다. 노 대통령은 핵심 지지층만을 위해서 일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모시기를 할 작정이라면 국민 전체를 모셔야지 특정 세력만 우대하면 필연적으로 짓밟힌다는 생각을 하는 국민이 생긴다. 상대적 박탈감이다. 똑같은 국민인데 누가 페달 신세를 감수하겠는가.

하긴 국제사회의 차별대우는 더 심하다. 파키스탄이 북한 이란 리비아 등에 핵기술을 수출하는 핵확산 네트워크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이 최근 들어 속속 밝혀지고 있다. 파키스탄이 국제사회의 금기(禁忌)인 핵무기 확산을 주도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과거에는 옛 소련 견제를 위해, 지금은 대(對)테러전을 위해 파키스탄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범죄행위’를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 파키스탄이 모시기 전략의 수혜자라면 핵포기 압력을 받고 있는 북한은 영락없는 페달신세다.

어떻게 하면 자전거 타는 사람의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예일대 ‘세계화 센터’에 보낸 기고문을 읽어보자. 그는 미국의 책임에 대해 이렇게 갈파했다. “미국은 가능할 때는 언제나 세계 각국과 협력해야 한다. 일방적 행동은 어쩔 수 없을 때에만 해야 한다. 그러나 공화당 정부는 가능할 때는 언제나 일방적으로 행동하고, 어쩔 수 없을 때에만 협력해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클린턴은 미국의 이라크 정책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통치하되 정치하지 말라 ▼

클린턴의 글에서 미국을 노 대통령으로 바꿔도 뜻이 통한다. “노 대통령은 가능할 때는 언제나 야당 및 국민과 협력해야 한다. 일방적 행동은 어쩔 수 없을 때에만 해야 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가능할 때는 언제나 일방적으로 행동하고, 어쩔 수 없을 때에만 협력해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측근비리가 특검으로 넘어가고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이유를 헤아릴 만하지 않는가.

더구나 노 대통령의 특정 집단에 대한 애정은 노골적으로 정치적이다. 클린턴의 국내정치 보좌관이던 브루스 리드의 말처럼 국민은 통치하는(governing) 대통령을 바라지, 정치하는(politiking) 대통령을 원하지 않는다. 과연 그런 기대가 이루어질 날이 올까.

한강변에서 자전거 타는 것이 취미지만 올봄에는 나갈 생각이 별로 없다. 짓밟아야 할 페달에 미안해서.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