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군의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이하 방폐장) 건설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7일 서울대 교수 63명이 관악캠퍼스에 방폐장을 유치할 것을 요구하고 나서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이들은 “방폐장이 주민 안전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확신을 바탕으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고자 한다”고 했다.
원자력발전에서 나오는 전기의 편리함은 즐기면서도 원전 유지의 기본 시설인 방폐장 설치에는 반대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어디 방폐장뿐인가. 사회 곳곳에 ‘우리 동네에 혐오시설은 안 된다’는 님비현상이 만연해 있다. 이 점에서 서울대 교수들의 방폐장 유치 선언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번 ‘선언’이 현실이 되려면 수많은 고비를 넘어야 한다. 서울대 당국은 이들의 선언을 ‘우국충정’으로 평가했지만, 관악구청측은 “교수들이 관할구청과 사전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건의안을 발표해 유감”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청원, 주민 50% 이상의 찬성 등의 방폐장 유치 절차를 감안하면 서울대 교수들의 ‘선언’이 실현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사회적 논란과 별개로 ‘관악산 방폐장’은 과학적으로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95년 정부는 방폐장 부지로 인천 앞바다의 굴업도를 선정했다가 정밀 지질조사 결과 활성단층이 발견돼 취소한 바 있다. 여기서 보듯 방폐장의 과학적인 안전성을 검토할 때 지질상태가 중요한 결정 요소다. 그러면 과연 관악산은 지질학적으로 안전한가.
방사성폐기물은 수백, 수천년간 장기적으로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 이를 위해 방폐물은 암반 동굴에 저장하는데 암반 내에 파쇄가 많으면 방폐물이 지하수에 노출돼 이와 함께 외부로 유출될 우려가 크므로 파쇄가 적은 암반이라야 방폐장 터로 최적이다.
관악산은 화강암으로 구성된 양호한 암반이라는 것이 서울대 교수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화강암이라고 모두 양호한 것이 아니다. 관악산이 2억년 전 땅속의 마그마가 지표 쪽으로 올라오면서 서서히 굳어 형성된 화강암인 것은 맞다. 그러나 상부 규모가 비교적 작은(가로 6km, 세로 5km) 화강암으로 수직절리가 많아 파쇄가 심하다.
게다가 수직절리의 틈새에 철분이 많이 붙어 있어 암석이 붉은 색깔을 띠는데, 이는 화강암이 형성된 뒤에도 수직절리들을 따라 황산이 포함된 뜨거운 지하수가 많이 유입된 흔적이므로 앞으로도 지하수가 쉽게 유동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또 관악산에는 지형과 평행한 수평절리가 거의 발달되어 있지 않다. 이는 관악산의 지하 역시 파쇄가 심한 불량 암반임을 보여주는 증거다. 실제로 관악산 등산로에 가 보면 암석들이 비교적 작은 암괴로 구성되어 있고 풍화도 많은 취약한 암반임을 금방 알 수 있다.
방폐장 논란을 언제까지나 두고 볼 수만 없다는 충정과 의지를 이해한다. 그러나 방폐장 문제는 해당 지역의 지질 특성 등에 대한 과학적 검토가 전제되지 않고선 비생산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점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수곤 서울시립대 교수·토목공학